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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힘] 정밀아, 서울역에서 출발(심정용)

시선의 힘

by 제3시대 2020. 12. 3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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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아, 서울역에서 출발

심정용*

여기에 처음 쓴 글에서 나는 이태원을 처음으로 제대로 걸어보았을 때 느꼈던 초라함을 이야기했다. 사실 이태원로나 보광로 같은 큰길을 제외하면 이태원 일대 지형은 대부분 울퉁불퉁하고 구불구불하다. 그 분위기도 마냥 번쩍이지만은 않고 오히려 오랜 시간의 궤적이 군데군데 드러나기도 한다. 그러니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까지 주눅이 들어 있었는지 다소 어리둥절하다. 하지만, 실은 알 것도 같은데, 이전까지 내가 알던 이태원은 내 동기들과 주한미군들이 주기적으로 순찰하던 ‘번화가’였기 때문이다.

위아래로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에서 이촌역까지 걸쳐 있으며, 6호선 삼각지역과 녹사평역이 횡단하는 군부대의 한 구석에서 1년 반을 지냈다. 외출, 외박, 휴가를 나왔다 돌아갈 때면 회색 담장이 보기 싫어 꼭 큰길 맞은편에서 한 꺼풀 더 들어가 천천히 거닐곤 했다. 그 짧고 고요한 길을 가는 동안 지명은 갈월동에서 후암동으로 슬쩍 넘어갔는데, 나는 갈색 벽돌집이 어지러이, 저기 남산 자락까지 늘어선 그 길을 참 좋아했다. 게이트 맞은편, 당시에는 그저 허름해 보이던 감자탕집과 독특하고 낡은 간판의 태국 음식점은 전역 이후에 보니 이름난 맛집이 되어 있었다. 이런 분위기와 ‘이태원’ 사이는 그 어감부터 너무나 멀게 느껴졌고, 실제로 내가 머물고 일하던 곳과의 거리도 멀었다. 그렇게 이태원과 해방촌 대신 거닐던 곳이 맞은편 청파동으로, 올해 나온 정밀아의 앨범 <청파소나타>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정밀아를 처음으로 제대로 들어본 건 작년 봄에서 여름, 정우와 박소은을 듣기 시작한 때였는데, 정밀아는 그때 알게 된 친구가 줄곧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다. 그는 신학대학원에 합격하고 군복무를 하던 도중 ‘K-개신교’의 부끄러운 모습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 충격에는 온갖 부조리, 군사주의, 혐오, 폭력성이 결부되어 있었고, 그는 마주해버린 현실과 군복무 중인 자신의 상황 사이에서 힘들어하며 밤잠조차 힘들어했다. 그런 그가 다시금 잠들 수 있게 한 음악이 정밀아의 음악이었다. 당연하게도, 잠들게 만들었다는 말이 지루한 음악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잠들지 못하던 이에게 다시 잠을 되돌려 주었다면, 그건 일종의 구원이라 여겨도 무방하리라. 레비나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면증이란 ‘깨어 있음’을 벗어날 여지가 없다는 의식이 목적도 시작도 끝도 없이 지속되는 일이다. 여기에는 낡은, 아니 시간성이 없으므로 낡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같아 빠진 현재와 과거만이 존재하며, 기억을 통한 서사의 매듭짓기가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면증의 치유란, 불안으로 인해 지리멸렬한 불사성에 매달리지 않고, 어제와 오늘처럼 다시 깨어날 내일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안겨주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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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아의 음악을 들으면서 왜,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를 납득할 수 있었다. 그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 사람은 노래를 만들 때 쌓아 나가는 일이 빼는 일보다 훨씬 많겠구나 싶다. 그만큼 많은 요소를 쌓는다는 게 아니고, 반대로 뭔가를 뺄 일이 참 없을 것 같다는 의미이다. 대체로 그의 노래는 더블베이스나 기타의 진중한 근음으로 시작하며 최소한의 반주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지곤 한다. 목소리는 숨과 말과 음으로 이루어진 종이비행기를 연상케 하는데, 숨이라는 종이비행기의 끄트머리에 의미를 담은 말을 살짝 접어 얹고, 음악적 요소로서 음의 위치로 실어 보내는 것만 같다. 그러니 얼핏 단조로워 보여도 그 소리에 음향적, 의미적, 미적 빈틈은 여간해서 들어차지 않는다. 자연히 목소리와 기타만으로 음악이라는 공간을 충분히 채우며, 그 최소한의 ‘쌓음’에 조금 필요한 다른 무언가를 간혹 얹을 뿐이다. 이렇게 공백에서 시작하여 굳건히 다지며 올라갔으니 악기 구성에 무리하지 않고, 쓸데없이 얹지 않으니 뺄 일이 적다. 마치 국물이 더없이 맑으면서도 재료의 흔적이 진하고 깔끔히 들어찬 국 요리를 마주한 기분이다.

묵묵히, 비스듬히, 그러나 착실히 이루어지는 그의 음악적 색채는 가사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음절 수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맞추지 않아 적당한 리듬감이 살면서도 어색하게 늘리는 일은 결코 없다. 그만큼 읊조리고 다듬었을 가사는 땅 딛고 선 이의 눈높이에서 말을 건넨다. 1집 <방랑>에서 그 세계관이 선명하게 드러나는데, 앙상한 밤 아래 화자는 ‘붉은 벽돌집 성당’에서 ‘가파른 산길’을 지나 남쪽의 ‘첫 마을’에 다다른다. ‘짧은 휴식’을 스치고 떠나는 그의 발걸음에서는 필요 이상의 희망도 절망도 품지 않는 담담함이 묻어난다. 아무리 가도 ‘찬란한 세계’는 없겠지만, 밤을 지나는 이 불안 속에서도 ‘나무는 내게 그저 견디라’ 하고, 그는 그렇게 간신히 기도를 이어 ‘혐오와 허무를 삼키는 노래’를 입김처럼 내쉰다.

정밀아의 이런 정서는 자연물과 만나면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 중에서도 바다의 고장에서 나고 자란 사람 답게 바다는 그의 노래 곳곳에 깃들어 있다. 바다는 떠나지 못한 <우리들의 이별>이 저녁 노을과 함께 머문 곳이면서도, 도시를 떠나 <낭만의 밤>을 누리는 곳이고, 이외에도 여러 정서와 맥락 속에서 소환되는 일종의 근원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일까, 끝을 모르는 깊이와 잔잔한 수면, 육지와의 경계에서 찰싹이는 파도는 가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이를테면, 계단 몇 칸만 내려가므로 반지하는 절대 아닌, 1층의 작고 아늑한 <내 방은 궁전>이 그렇다. 복작이는 삶을 영위하는 공간은 ‘낡았지만 편한 외투’처럼, 언제 허물어질지 몰라도 깊고 고요한 궁전으로 남아 있다. 그런가 하면 칼립소 리듬으로 높고 차가운 벽을 두드리듯 진득한 구원을 읊조리는 <봄빛>도 있다. ‘찬 공기 뚫고 스며들’ 그 봄빛은 ‘자비 없는 세상으로 공평하게’ 내리쬐는 잔잔한 은혜가 된다. 그런 정밀아의 세계에서 <꽃>은 ‘너이기 때문에’ 소중하고 사랑스러우며, 산을 뒤덮는 푸름은 <무명>, 그러니까 ‘무심히 밟고 가는’ 이름 없는 ‘그냥 풀’이 일구어낸 색채이다.

이렇듯 오롯이 자신의 물성에서 돋아난 시선은 역설적으로 다양한 존재와 존재들의 말을 가능케 한다. 가만히 이야기하듯 가사를 풀어놓는 것 같지만, 정밀아의 노래 가사에는 정말이지 다채로운 종결 어미가 뒤섞여 있다. ‘이 봄빛을 빼앗지 마오(<봄빛>)’처럼 경건하고 간절한 외침이 있는가 하면, ‘바보 되어간다(<달 가는 밤>)’처럼 툭 던지듯 털어놓는 담담함이 있다. 때로는 ‘기억해’와 ‘붙잡아’의 일상적 서정성, ‘무뎌진다고 했나’와 ‘자신 없소’의 예스런 여운이 (<우리들의 이별>) 한 곡에서 공존하기도 한다. 이런 어조들은 다소 어색하리라는 예상과 다르게, 음악적 세계관과 곡의 주제를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저마다 나름대로의 뉘앙스를 빚어낸다. 그러고 보면 사회적 액센트 자체가 복수성을 가지며, 우리들 역시 오롯이 우리로 있으면서도 시시각각 다른 어조를 내지 않던가. 다른 기호가 만드는 다른 느낌은 나아가 다른 존재에까지 살짝 걸쳐 있다. 그냥 풀과 좁고 낮은 곳의 사람들과 함께한 자신으로부터 정밀한 언어를 조각조각 쌓아 올린 곳에는, 거창한 ‘벼락 같은 구원’이 아니라 바다와 햇살처럼 잔잔한 평안이 겨우 한 조각 깃든다. 그러나 춥고 어두운 면면마다 공평하게 깃든 그 한 조각은, 실은 모아 놓고 보면 아주 커다란 덩어리일 것이다.

<청파소나타>는 그런 정밀아의 세계관이 새로운 가지를 뻗어 나가는 듯한 앨범이다. 자신이 머무는 청파동의 하루와 한 해를 녹여낸 이 이야기에서는 안정적으로 구축된 나-타자의 관계 위에 삶-사람의 장소를 쌓는다. 물러날 밤 아래 윤동주처럼 되뇌는 <서시>는 ‘지금 이곳’에서 ‘오늘의 나’를 살리라는 다짐 섞인 기도이다. 비 오는 날 안주 없이 마신 막걸리 한 잔에서 어른의 어른됨을 톺아보는 <어른>, 동생, 후배와 언니를 오가며 나눈 대화를 모은 <언니>, 겨울답지 않은 어느 겨울날 자기 안의 공백을 들여다보는 <춥지 않은 겨울밤> 같은 노래에서는, 나라는 타자와 나 같은 타자 사이에서의 작고도 끊임없는 삼투현상을 다룬다.

그렇게 한층 굵어진 뿌리와 줄기가 돋보이는가 하면 <무명>이나 <봄빛>에서 이미 엿보인 정치적 연대의 메시지는 한층 더 선명히 울려퍼진다. 투쟁가 리듬으로 이루어진 <오래된 동네>에서는 좁고 험하고 낡은 곳의 삶들을 직시하며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은 아닌지’ 되묻고, <광장>에서는 뭇 삶과 욕망과 절규와 함성이 뒤엉킨 ‘광장’의 공간성을 ‘사람 사람’으로 함축하여 매듭지으며 ‘한 평 마음의 광장’으로 예의 그 한 켠 햇빛을 마련한다. 그런가 하면 ‘큰불’과 ‘역병’으로 한 해를 요약하는 <환란일기>는 어른을 위한 동요처럼 적당량의 위로를 건넨다. ‘많은 걸 잃고 겨우 조금을 배우고’, 그러면서도 한 발짝 만큼의 ‘양보와 이해’를 새기고 정성껏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조심스러운 믿음 또는 선언. 섣부르지 않으면서도 넉넉한 뉘앙스로 희망을 노래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공력이 들었을까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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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곡인 <서울역에서 출발>은 편안한 칼립소 리듬과 일정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가운데 조그만 변주에 가사만이 대화하듯 달라지는 포크 곡이다. 공연하고 온 어느 날 아침, 엄마에게서 걸려온 전화에서 시작하는 노래는 그가 서울역과 얽힌 온갖 사연을 늘어놓는다. 공연이 끝나고 밤 늦게 서울역에 내려 돌아간 이야기, ‘혼자 대학 시험 보러’ 서울역에 상경한 이야기, ‘그림 그려서 멋진 화가가 될 줄 알았’으나 ‘딴짓’을 거듭한 끝에 ‘노래하며 잘 살아’가는 이야기. 시간이 흘러 서울역 건물은 ‘근사하게’ 변했고, 내려가는 기차는 아주 좋고, 빠르고 세련된 열차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도 지금은 서울에 올라와 사는데, ‘4호선 타고 서울역에서 출발하면은’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고 한다.

이 곡을 듣노라면 나 역시 서울역과 얽힌 이런저런 생각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상암동에 위치한 회사의 출퇴근길은 더없이 간단한데, 4호선을 타고 내려가 서울역에서 공항철도로 갈아타고 세 정거장 가서 DMC역, 내려서 5분가량 걸어가면 도착이다. 서울역 출발 9시 26분, 33분, 또는 38분 열차, 이후에는 지각인데 다행히 아직 그걸 타본 적은 없다. 간혹 출장을 갈 때는 서울역에서 비슷한 시간에 ktx를 탄다. 그 예전 날, 서울역을 지나칠 때면 다음에 내려야 할 숙대입구역을 떠올리며 살짝 우울해졌고, 후암동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권태를 달랬다. 정밀아가 나고 자란 바다의 고장에서 대학을 다닐 때는 대부분 버스로 4시간 30분을 달려 오가곤 했는데, 학교 생활 막바지에는 ktx역이 생겨서 가끔 타보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조금 산책하다 보면 서울역인데, 조금 더 올라가 회현역 언저리에서 길을 따라 남산도서관에 올라갔다가 해방촌으로 내려오는 길을 작년부터 참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을 들으며 매번 찡하게 만드는 구간은 따로 있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내 스무 살은 한 백 번은 변한 것 같아’라는 가사가 그것이다. 실은 헤아려 보자면 얼마든지 헤아릴 수 있을 삶의 변곡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점과 현재를 나란히 놓고 보면 ‘한 백 번’이 생각날 정도로 다르고 다르다. 살아가는 게 이런데 어떻게 생각한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으면서도, 어떻게 생각한 만큼 이렇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혀를 내두르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처음과 끝을 기억으로 엮어 서사화하는 일은 결국 어떤 의미를 빚어내는 일이다. 그것이 서울역이든 어디든 무엇이든, 하나의 축으로 삶을 돌이켜볼 때에 나오는 궤적은 하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면서도 정밀아는 말한다. ‘그게 뭐 어떻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그랬구나 하는 거예요.’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뀌고 여러 일이 있었다는 사실들의 홍수에 놀라워 하다가도, 그 자체가 어떤 삶의 진실이라는 소박한 깨달음. ‘오늘의 세상이란 어제와 같을 수’ 없지만, 그 다름의 다름에 천착하지 않으면서도 달라져온 나와 타자를 섬세하게 살피는 눈길에 역시 ‘인간을 구원하는 그 어떤 따스함(<환란일기>)’이 한 조각 서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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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아의 음악에 비로소 잠들 수 있었던 친구의 작년은 괴롭고 불안해 보였다. 그는 전역 후에 결국 신학대학원 등록을 취소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높고 창백한 삼성동의 건물만큼이나 비인간적인 문화가 퍽 힘들었다고 한다. 다른 방법으로 알아본 목회 과정의 끝에서는 또다시 말도 안 되는 ‘사상검증’을 마주해야 했다. 결국 모두 그만둔 그는 좋은 시기, 좋은 기회를 입어 힘들지만 의미 있는 기독교 언론에서 일하게 되었다. 요새는 만날 때면 늘 선배들의 무서운 피드백과 취재 과정에서 겪은 한국 개신교의 ‘K-함’, 명시적 출퇴근과 실질적 출퇴근이 다를 수밖에 없는 기자로서의 삶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 다른 어조 가운데 크게 흐르는 주제는 결국 보람과 의미, 다행스러움과 즐거움 같은 것들인데, 듣다 보면 이미 그 짧은 1년 남짓의 시간 동안 ‘한 백 번’은 변했구나 싶어 놀랍고도 감사한 마음이 들어찬다.

‘한 백 번’은 변해버린 세계, ‘보통 아닌 것들이 보통이 되는 오늘’ 안에서, 우리는 여전히 마디마디 새기며 살아간다. 세상은 가끔 동화보다는 민담, 갑작스레 피가 낭자하고 주인공이 잡아먹히는 잔혹한 이야기에 가까울 때가 있다. 그 안에서 누군가로 하여금 울고 웃고, 덜 죽고 더 살아가고, 기꺼이 잠들고 깨어나게 만드는 다채롭고 대단한 기적은 음악이 꾸준히 일으켜온 은총이다. 노래는 공기를 떨어내어 우리의 공간을 형성하고, 함께 울려 퍼지며 미진한 연대를 짜고 흩는다. 흐리고 추운 겨울에 봄빛을 바라고, 나무들의 목소리에 힘입어 견디며 ‘동경의 별’을 바라 걷는 길. 한치 앞도 알 수 없는데도 감히 무언가를 바라고 살아보는 일이야말로 실은 꾸준히 위대한 일이라 믿는다. 그러니 나나 그 친구나, 이 시절을 견디는 누구나,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푸른 바다에 가보려’ 하는 눈길을 거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언제 어떻게 가능할지는 몰라도, 분명 어떤 내일엔가 푸른 바다에, ‘서울역에서 출발.’

 *필자소개 

비교문학은 대관절 뭘 공부하는 건가요? 늘 질문받지만 매번 잘 대답 못하고 나도 모르고 심지어 아무래도 계속 모를 것만 같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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