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아(청소년극 연구자)
이 연재는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중고등부의 91년 예술제인 뮤지컬 “그대 버려졌나”의 참가자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프로젝트이다. 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이 당시 공연 체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40대가 된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탐색하는 작업이다. [경동 예술제, “그대 버려졌나”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배경에 대해서는 본 연재의 초반에 소개한 바 있다.]
J는 “그대” 당시 중2 였고 뮤지컬 전곡의 피아노 반주를 맡았다. 현재 독일 어느 오페라 합창단에서 소프라노로 노래하고 있다. 인터뷰는 2019년 1월 21일 화상 통화로 실시하였다. 아래 대화에서 Y는 나다. 나와 Y는 같은 또래로 중고등부 시절 동고동락하며 많은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였고 “그대‘에도 같이 참가하였는데 그러한 친분이 대화 내용에 드러난다.
Y: 당시를 떠올리면 어떤 기억이 나니?
J: 학교가서도 맨날 교회 얘기 하고 그런거 [“그대”] 한다고 되게 자랑스러웠던 것 같아. 초대 다들 많이 했지만 애들 와서 보라구... 고등학교 때 교육이 너무 이상하다 비판하면서 우리가 신우회[중고등부 자치 프로그램]하고 이러는거 이게 참 교육이지 그런 반발심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아. 왜 학교에서 이렇게 하지 못하고 그렇게 하느냐 우린 교회에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 약간 이런…
Y: 맞아. 나도 그랬어. […] 교회에서 학교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자꾸 주니까. 예술제 주제도 “그대”만 빼고 입시가 뭐가 잘못됐고 이런게 되게 많았잖아. 그래서 학교에 대한 비판이 자연스럽게 강화되었던 것 같아. [...] 너 몇 년 전에 나한테 니 인생에서 신우회 시절 만큼 열정적으로 몰입한 시간이 없다고 그랬었어. 그게 무슨 얘기였니?
J: 그 말 그대로지 않을까? 특히 신우회 짤 때… 6개월꺼 미리 계획하고 그러잖아. 프로그램 채우려고 엄청 머리 쓰고 집에 가서도 계속 그 생각하고 전화하고. 전화 엄청 많이 했던거 같은데? 맨날 그러지 않았나? […] 나라는 사람이 신우회 처럼 어떤 프로젝트가 올랐을 때 되게 희열을 느끼는… 뭔가를 짜고 일이 되게 하는 그걸 되게 좋아하는 성향인 것 같아. 내 스스로도 잘하는 것 같은. 근데 [중고등]학교에서는 그런 일이 별로 없잖아. 근데 신우회도 예술제도 중3이나 고2, 우리가 주체적으로 할 수 있었을 때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거를 했던 것 같아. 나의 그거가 너무 딱 맞아 떨어졌던거 같기도 하고. 예술제도 처음에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서 이렇게 서로 의견을 해서 연습을 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나한테 엄청난 희열을 주는 일인 것 같고.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훨씬 전문적인 일을 하고 있고 무대는 완성도가 훨씬 높지만. 다르지 관점이. 물론 재미있지만 좀 다른 것 같아. 물론 지금도 어려운 작품 본 연습 때 죽 쑤고 그러다가 초연 때 잘 하면 희열이 있지. 그런데 옛날에 비한거랑 다른 느낌인 것 같고. 지금은 다 만들어진거에 내가 같이 한다는 느낌이 많고 옛날에는 내가 뭔가 한다는 느낌이 더 많았던 것 같아.
Y: 특히 “그대” 관련해서 기억에 남는 것은?
J: 응.., 일단 되게 재미있었던 생각이 나고. 그냥 같이 이거를 하고 있다는게 재미있지 않았을까 […] 중2 때 예배 반주하고 있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대”도 반주를 하게 되었던거 같아. 많이 생각 나는거는 음악이 되게 재미있었던 기억이 […] 다른 예술제 했을 때는 보통은 시중에 나와있는 가스펠이나 이런거 섞어가지고 [했는데] 유난히 “그대 버려졌나” 할 때는 음악에 대해서도 애착이 있었고 노래 자체에 다들 굉장히 빠져 있었고 왜 우리 끝나고 나서도 막 수련회 같은데 가서 약간 상황 비슷하면 계속
Y: 맞아, 맞아. 패러디 패러디
J: 어, 어, 어 […] 나는 연기 연습하고 노래 연습할 때 거의 계속 있었잖아. 노래 연습을 시키는거지 거의 […] 오히려 밴드부랑 내가 뭔가 했다는 느낌이었다기보다는 연기했던 파트랑 더 같이 했다는 느낌이 있었지.
Y: 같이 했다는게 어떤 느낌이야?
J: 어쨌건 그 극은 노래가 계속 많이 나왔잖아. 노래가 되게 중요하고 내가 그 노래를 이끌어가는 입장이었잖아. 피아노 반주가 항상 있어야 했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 극에서 되게 중요하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지금 돌이켜봤을 때는 ‘나는 여기서 없어서는 안돼’ 이렇게 … 내가 굳이 무대에서 [서지 않아도..] 어떻게 보면 이 극에 내가 굉장히 더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느꼈겠지. 재미있었지. 약간 같이 노래하는 기분이었던거 같아. 춤 연습 보고 있는 자체, 연습 자체가 되게 재미있었던 것 같아. 내가 할 일을 안 할 때는 옆에 있던 애들 이렇게 사브작 사브작 잡담하고.
Y: 신기한게 P[연출] 선생님이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밀어붙이신게 분명히 있었는데 연습이 항상 그냥 재미있었어.
J: 나는 P[연출] 선생님이 그 당시에 되게 위대하게 느껴졌어. 뭔가 그 분이 오시기 전에는 잘 풀리지 않았던 것들이 그 분이 사람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게끔 만드시고 그런게 너무 신기하고. 그래서 우리가 했지만 어쨌든 마지막에 완성품이 되었을 때 ‘내가 이걸 했는데 이렇게 멋있다고?’ 이런거 있잖아. 완성품에 놀라는. […] 사실 그 당시 내 눈에서 봤을 때는 ‘아, 저렇게 위대하신 분이라서 이렇게 멋있게 다 하셨구나’ 약간 이런…
[…]
내가 공연날 한 키를 올려쳤잖아. “신나게 마셔라” [탕자와 술 친구들이 술을 질펀하게 마시고 취해서 부르는 노래] 에서 검은 건반 위치가 옆으로 하나 갔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오른쪽으로 옮겨지면서 느낌까지 비슷하니까. 근데 내가 긴장을 했나보지? 내가 엄청난 긴장을 했나봐.[…] 나머지 악기가 멈추고 다 나를 쳐다본 것 같아. 드럼만 치고. 나중에 얘기해줘서 알았어. 애들은 ‘신나긴 한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노래하기가 어렵지?’ 이렇게 느꼈다고.
Y: 네가 지금도 음악을 하고 음악극을 하잖아. 음악적으로 돌아볼 때는 그게 어떤 작품이었다고 기억하니?
J: 음악적으로만 놓고 봤을 때? 그냥 아이들이 하는 공연이지.
Y: 그 당시에는 어땠어? 청소년이었지만 예술가로서의 너를 들여다본다면 작업할 때 느낌이 어땠어?
J: 그 때는 예술가적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 그냥 내가 할 수 있고 나를 필요로 하니까 했던거고. 그 작품이 무슨 고퀄의 합창을 요구하는건 아닌거잖아. 그냥 같이 부르는거지. 그냥 재미있게 하는게 더 중요한거였지. 그게 노래를 더 잘 해서 화음을 잘 맞추고가 촛점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Y: D는 자기는 밴드에 낄 수 없는 사람인데 같이 했고 사람들 보면서 ‘우리 참 잘한다’ 생각 했었대.
J: 뭘 잘했지? (웃음) 그 말이 뭔지 대충 알 것 같은게 그 때는 그렇게 그 조합으로 뭘 한 적이 없었잖아. 그런거 할 수 있는게 예술제 밖에 없었잖아. 그 당시에 무슨 씨씨엠이나 이런게 엄청 활발하게 있었던 시대도 아니고.
Y: 기껏해야 최덕신.
J: 최덕신도 막 나왔을 때고. 요즘처럼 막 찬양 집회 그런 것들이 활성화됐던 때는 아니잖아. 그 때는 우리가 S 오빠 드럼치는거만 봐도 “오~~” 그랬잖아. 엄청 멋있고. 왜냐하면 볼 수가 없으니까. 무대 오면 갑자기 악기 늘어나고 그 자체가 갑자기 “오~~” 이렇게 된거지. 드럼 끼고 기타 끼고 하니까 “멋있네?” 이랬겠지. 근데 내가 뭐 “나는 밴드니까 우리의 하모니에 더 집중하겠어” 이런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는거지.
Y: 돌아보면 “그대”가 예배였다고 기억이 되니? 그게 예배라고 생각을 했니? 우리가 몸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말을 늘 했잖아.
J: 예배라는 말을 늘 했어도 개념이 잡히지… 엄청 와 닿지는 않았던 것 같고. 돌아보면 그랬었던 것 같아. 돌아보면… 응. 그렇지. 수련회 아니면 예술제 때마다 터질 것 같았던… 끝나고 나서 우리가 다 울잖아 정말. 다 부둥켜 안고 다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았나? 손잡고 기도하고. 돌아가면서 찾아다니면서 손잡고 기도하고 그러지 않았어?
Y: 맞아.
J: 마지막에 다 울면서 갑자기 불을 켜면서 축제처럼 올나잇 [춤추고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놀면서 밤을 지새우던 일] 하고 이랬던 것들이 그 감정 터질 것 같은 그런 그 충만한… 있잖아 이렇게. 너무 기쁘고 그 때는 그게 말로 표현이 안됐지. 뭔지 잘 몰랐지만 충만한 느낌이었는데 뒤돌아보았을 때 나는 그게 성령충만이라고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거든. 어느 예배보다도 정말 그 정성을 다해? 그랬던 예배였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 이런거 하고 나면 애들 엄청 친해지잖아. 서로 좋아하고.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끊임없이 달고 살았잖아. 편지도 엄청 많이 쓰고 서로. 그런게 되게 정말 우리한테 중요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청소년기에 중요했었던 것 같아. [...] 그런데 결국은 그 다 그게 남아있지 않나. 표현 방식만 다른거지.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
Y: 그런게 있어. 기대치가 있는거지. 사람에 대한 태도나 관계 맺는 방식에 있어서 그 시절에 어떤 아이디어가 생긴 것 같아. 어떤 감각이. 그게 아직도 영향을 미치는거 같아.
J: 그렇게 끈끈하고 그런 환경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사랑받았던 경험이 사실은 굉장히 축복인 것 같고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거를 맨날 초자연적인 체험으로 보여주시는게 아니잖아. 사람을 통해서 많이 보여주신다고 생각을 하는데 사랑하는 연습을 많이 했잖아. 사람에 대해서 경계하지 않고 신뢰를 갖고 시작한다고 해야되나?
[…]
경동교회에서 계속 자라다가 내가 스물 여섯 정도 됐을 때 [유학 가면서] 다른 교파에서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접하게 된건데. 우리가 했던 활동을 돌아봤을 때 그 때 고 2 때 고민해서 대본 쓰고 그랬잖아. “너두 교회 다닌다며?” [94년 예술제, 교회 다니는 친구들의 실천의 문제를 다룬 창작 뮤지컬] […] 근데 그런 생각을 했던 자체가 경동교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우리 교육의 결과물 같은거라는 생각이… 나중에 다른 교회를 다녀보고 이렇게 봤을 때는 그 어린 아이들이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고민했다는거잖아. 그게 너무 새롭더라고 오히려. 사실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들이 그런거를 고민하지는 않는 것 같거든? 우리는 그게 너무 당연하고 그렇게 배워왔고 했지만 모든 교회가 다 그렇게 가르치지는 않잖아.
Y: 개인적인 신앙인 경우가 많지.
J: 그렇지. 궁극적으로는 그리로 가야하지만 우리는 그 당시에 거의 그게[실천의 문제가] 다였던… 내 생각에는 그래. 그 때 주제를 잡거나 이런거에 굉장히 많이 생각하고 나도 의견을 냈던 것 같은데 그 당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고민은 그게 다 였던 것 같아.
Y: 나는 사회 참여에 대한 책임이 기형적으로 커지다보니까 무언가 기본에 소홀해지는 것에 대한 열등감 같은게 있었거든. 한 동안은 사회 참여 전에 인격이 되어야지… 그런 생각 많이 했는데 […] 지금 생각해보면 수련회 때마다 중 1 때는 환경문제, 중 3 농활 가서는 도시화와 농촌 문제, 고1 때는 여성 차별… 이런 얘기를 다는 못 알아듣지만 계속 듣잖아. 계속 ‘우리가 뭘 해야되지?’ 항상 끝나고도 평화의 기도로 결단하고 그게 생활화가 되었던거같아. 뭔가 실천으로 이어져야되고. 이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이. 니말대로 그게 신앙의 중요한 부분이었던거 같은데 우리 교육의 안 좋은 점들을 스스로 반성한답시고 그걸 너무 폄하했었어 내가. 근데 그게 대단한건거 같아.
J: 대단하지. 교회를 떠났을 때 비로소 내가 믿었던게 모든 기독교의 모습은 아니구나 라는걸 느꼈던거지. […] 그 당시에는 굉장한 자부심이 있었잖아. 지금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런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거는 엄청난 축복이었다고 생각해. 내 친구는 교회 수련회를 갔는데 식사 때마다 성경을 암송해야지만 밥을 줬대. 그래서 그냥 안 외우고 안 먹었대. 그런 교회 다녔으면 나름 또 열심히 신앙생활 할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 기독교가 욕을 먹거나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자기하고 다른 것을 배척하고 그런거잖아. 우리가 어렸을 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이런 말도 굉장히 많이 하고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도 막 이렇게 했는데 지금 보면 정말 자유함이 있었던 것 같고. […] 신앙 교육을 하는 데 있어서 그런 방법들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S [현재 목회 중인 선배] 말대로 주입식으로 하나님을 알려주는게 아니라 찾아가고 체험하게 했다는 말이 딱 맞는거 같다…
[…]
그래도 신앙 교육에 있어서 약간 성경적으로 어느 정도는 발란스를 좀 맞춰줬더라면 하는 바램이 있어. 사실 기도를 한다던지 말씀을 통해서 서로를 격려하거나 이런거에서는 약했던거 같아. 말씀을 배우기는 하지만 말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하는거는 부끄러워한다고 할 수도 있고 약간 소극적이잖아. 근데 나는 고등학교 때 그런 것도 되게 필요했던거 같아. 같이 기도도 하고 싶었고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싶었던 것 같아. […] 우리가 실천을 강조하고 살았었는데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는 너무 많이 배워왔어. 근데 결정적으로 왜 그렇지? 약간 이런거 있잖아.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관계에서 내가 확신이 없는데 ...
Y: 맞아. 그런데 그러면 아까 네말은... 일대일 관계 같은 것이 부족했어도 성령이 우리와 함께 했었다는거니?
J: 당연하지. 하나님의 은혜가 성경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게 오는건 아니잖아. 그걸 아는거에서 오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는 있는거지.
(끝)
ⓒ 웹진 <제3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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