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취지


  이주는 시리아 피난민으로 시끄러운 2016년 현상이 아니다. 인류 초기부터 아니 생명을 지닌 모든 이들이 생존을 위해 겪는 현상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현상이어서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주를 경험한 자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이질감, 집에 왔으나 집이 아니요, 낯선 곳이나, 그 곳에서 친숙함을 느끼는 딱히 안정되지 못하는 정체성의 복잡성이 그 한 고통이다. 동시에 대부분의 이주는 자발적이 아니라 폭력적으로 타의적으로 (전쟁, 빈곤) 자행되기에 더 큰 피해와 아픔이 따른다. 

  발제자는 이주를 식민주의, 특히 1947년 이후 탈식민주의 상황과 연결을 시키면서 어떻게 이주의 문제가 인종의 다름, 다름에 대한 배제와 차별로 이어지는지 고찰한다. 

  동시에 이주로 인해 발생하는 중요한 현상, 접촉점 (contact zone)의 문제와 타자화/재현 (representation)의 문제를 주의깊게 살핀다. 이런 이주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성탄절 사건, 소위 예수의 탄생을 이주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면서, 십자로 (crossroads) 경계선상에 함께 서 있는 이주의 하나님을 만난다. 

실천신학의 과제는 바로 이 십자로 경계선, 타자와의 만남, 만남이 가져오는 분쟁과 아픔, 동시에 상호의존, 기쁨에 관심하고, 그 길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여정에 참여하도록 신앙인들을 독려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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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난민들에 대한 짧은 생각


 

배근주
(Denison University 종교 윤리 교수, 성공회 사제)


 

          유엔 난민 기구(UNHCR [United Nations High Commissioners for Refugee])의 통계에 의하면, 2014년 한 해 동안 전세계적으로 오천 오백만명의 난민들이 발생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오랜 내전과 기근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들이다. 대한민국 인구수와 맞먹는 오천 오백만이란 숫자는 국제 난민들의 규모와 다양성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실제로 유엔 난민 기구는 2015년 현재 약 7천만명의 사람들이 무력 충돌과 환경 재앙으로 난민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고 한다. [각주:1] 
          내전으로 인하여 대규모의 시리아 난민들과 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콩고, 소말리아 출신의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유럽으로 탈출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지금, 우리는 난민들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국제 난민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교회는 난민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
          난민 인권 문제, 특히 전쟁 난민은 국경, 국적, 국가 간 이익 문제 뿐만 아니라, 종교와 인종 문제, 성차별 문제 등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회 구조적 문제와 맞물려 있다. 특히 “인종”이란 관점에서, 난민 문제를 살펴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들을 발견할 수 있다. 지난 1990년대에 옛 유고 연방이 내전에 휩싸였을 때, 국제 정치 무대에서 리더쉽을 보여주려한 클린턴 행정부는 십육만구천여 명의 옛 유고 연방 출신의 난민들을 받아들였고, 이들 중 대부분이 내전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였던 보스니아 무슬림들이였다. 현재의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난민을 대하는 유럽 국가들과 미국의 태도와 비교해 볼 때, 유럽에 거주하던 보스니아 난민들은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서방 국가에 이주하였다.
          미국에 정착한 가장 큰 난민 그룹은 옛 소련 연방 출신들로, 이들 중 상당수가 유대인들이다. 현재 미국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 약 칠십만명인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들 중 30%가 옛 소련 연방이 붕괴되기 전에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이고, 나머지 70%는 그 후에 정착한 사람들이다.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 난민들의 수는 이스라엘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수 보다 많다.
         보트 피플 (boat people)로 알려진 베트남 난민들은 국제 사회에서 난민들의 대표 얼굴이 유색인종으로 바뀐 사건이다. 1975년 남베트남의 수도인 사이공이 북베트남에 함락되고, 미군이 철수하면서 남베트남 정부나 미군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던 약 14만 명 정도의 베트남 사람들이 미국이나 유럽 국가로 떠났다. 그러나 1978년 호치민 정부의 과거 청산 정책이 가속화 되면서, 화교 출신 등을 비롯한 소수 민족들, 남베트남 정부에 가담했던 사람들 등등이 핍박을 피해 베트남을 떠나기 시작했고, 주변 공산국인 캄보디아와 라오스 사람들도 난민 행렬에 가담했다. 1975년과 1995년 사이 약 이백만명의 사람들이 베트남을 떠난 것으로 보고 되고 있으며, 이들 중 약 팔십만명이 해로를 통해 베트남을 탈출하여 안전하게 다른 나라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제대로 집계조차 되지 않는 수의 사람들이 항해 도중 태풍을 만나거나, 조악한 배가 파도에 뒤집히거나, 해적떼에게 약탈을 당하여 목숨을 잃었다.
          틱낫한 스님과 함께 보트 피플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촉구한 찬공 스님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베트남 전쟁의 즉각적 종료를 원했다. 전쟁은 모든 베트남 사람들에게 치유할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상처를 남겼고, 이 상처는 보트 피플로까지 이어졌다… 인도네시아, 홍콩,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같은 베트남 주변국들은 보트 피플의 상륙을 허락하지 않아서, 난민들이 탄 배는 공해상에 머물러야 했다. 공해는 위험한 공간이다. 해적떼들과 높은 파도 때문에, 지치고, 양식도 부족하고, 병약한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베트남을 떠났지만, 살 수 있는 희망이 너무 적었다….호주는 유색인종의 이민을 허락하지 않아서, 미국은 비자를 내주지 않아서, 유럽은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서, 주변국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두 난민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베트남 주변국들은 유럽과 미국 국가들이 나서서 난민 문제 해결을 약속하고, 유엔이 제한된 지역에 난민촌을 만들어 주고 나서야, 보트 피플의 일시적 상륙을 허락했다. 호주는 이민법을 바꾸어 유색인종의 이민을 허락하면서, 베트남 난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열었고, 미국과 캐나다, 북유럽 국가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베트남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무력 분쟁 지역을 탈출하여 국외로 간 모든 사람들이 난민 지위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 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들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 난민 지위를 부여하고, 이주 자격을 허락한다. 이 심사 기간 동안 난민들은 난민 캠프나, 임시 수용소와 억류소 (detention center)에 머물러야 하며, 이 기간이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영국과 같은 나라는 심사 기간 동안 난민들의 경제 활동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난민들은 영국에 이주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호주는 지금도 해로를 통해 도착한 난민들을 심사 기간 동안 구금 센터에 머물게 하는데, 여기에 머무는 기간 동안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난민들이 난민 심사에 떨어지거나, 심사 기간이 길어져, 더 안전한 곳, 경제 활동이 가능한 곳을 찾아 다시 길을 떠난다.
         지난 여름 터키 해안가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세살 짜리 시리아 난민 아이, 알랜 쿠르디 (Alan Kurdi)의 사진 한 장은 시리아 난민의 인권 문제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유럽 국가들은 2차 세계 대전 동안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유럽 난민을 이야기하며, 시리아 난민에 대한 자국민들의 감정이입을 호소했다. 자국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난민 쿼터를 늘리고, 난민 인권에 대해 도덕적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동안, 미국은 올해 일만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2017년까지 삼만명의 난민들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는데, 몇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여기에 속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동안 한국 언론들 뿐만 아니라 서방 언론들은 시리아 난민 발생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져야할 러시아와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정부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 이라크 전쟁 발발 후,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중동 지역에 정세불안을 가져왔고, 군사화된 이 지역을 더 군사화시켰다. IS와 같은 극이슬람 주의와 군사화가 결합한 반군조직 (para-military)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세력을 키우고, 러시아 무기를 수입하여 세를 불려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와 미국은 현재 IS에 대해 대대적인 공습을 가하고 있는데, 이 공습으로 인해, 난민들이 더 발생하고 있다.
          기독교의 사랑이란 관점에서 보면, 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난민들을 받아 들이고, 난민 문제 해결에 앞장 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랑, 또는 국제 정세에 대한 철저한 분석 없이 이루어지는 사랑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또한 난민들, 특히 시리아 난민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할 내 이웃으로 보기 위해서는 기독교 안에 극복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
          우선 광범위하게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는 ‘난민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유엔과 유럽 정부들, 그리고 언론들은 ‘난민 문제’에 대한 ‘짐 (burden)’을 전 세계가 함께 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표를 종종 한다. 이러한 관점은 ‘난민’을 만들어 낸 전쟁, 미국과 러시아의 군수업자들, 독재 정부 등이 문제의 근원이란 사실을 잊게 만든다. 즉, 난민들이 문제가 아니라, 난민들이 발생하도록 만든 국제 정치 구조와 전쟁이 세계 시민들이 짊어져야 할 ‘짐’인 것이다.
          또한 난민들의 이주 비용에 유럽과 북미국가들이 막대한 사회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최근 워싱턴 포스트지의 보도에 의하면, 난민들의 장기 이주와 이민이 오히려 이주 국가의 경제에 도움을 주거나, 최소한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난민들의 이주가 마치 자국민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것도, 이 보도에 의하면 오해에 불과하다고 한다. 언어와 문화 장벽 때문에 난민들이 당장 전문직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상당수가 소위 3D 업종으로 불리는 분야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들로 인해 오히려 이 업종의 임금이 올라가고, 지역 경제가 살아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난민들을 받아들인 덴마크의 여러 지역들은, 지역 노동자들의 임금이 난민 노동자들의 유입으로 상승하는 효과를 얻었다. 난민들을 억류하거나 심사를 엄격하게 하는 국가가 난민 관리 비용으로 더 많은 돈을 사용하여, 국가 예산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각주:2]

          조금만 더 깊이 살펴 보면, 난민들이 부유한 국가들의 사회 보장제도에 무임승차한다는 생각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사를 넘나들며 가족들과 함께 고향을 떠나고 여러 국경 지대를 통과하며,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아온 난민들이, 이주 국가에서 사회 보장 제도나 바라는 사람들로 머물거란 생각은, 이들의 생존능력을 무시하는 편견이다. 더구나 난민들도 서구 국가들이 낙원이 아니란 사실도 잘 알고 있고, 본국의 분쟁이 끝나면 또한 많은 수가 고향으로 돌아간다. 세계화된 인종 차별 주의와 이슬람 혐오주의가 맞물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난민들이 환영받지 못 하는 시대에, 국제 사회의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각 국 정부들이 꺼내드는 카드가, ‘자국민을 위한 일자리 보호, 사회 안정 유지, 국가 예산 문제’ 등이다. 더구나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정치인들이 난민들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실책을 감추거나, 자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난민 문제를 감춰서, 자신들의 전쟁 개입을 은폐하려고도 한다. 이러한 이유들이 난민 발생 문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세계 정치를 분석해야 할 책임을 우리에게 부여한다.
          하느님 나라는 국경이 없지만, 인간이 만든 나라들은 국경이 있고, 이 국경을 지키는 군대와, 국경을 다스리는 정부가 존재한다. 우리는 인터넷의 발달과 해외 여행의 자유화로 마치 우리와 타인을 구별짓는 국경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인터넷과 무역품들이 여러 나라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 때, 각 국 정부는 오히려 국경 수비를 강화하고 통제하면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사람들’과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사람들’로 세계 시민들을 구분하였다. 시리아 난민들과 같은 대다수의 난민들이 종교와 인종, 출신국 때문에 ‘국경을 넘을 수 없는 사람들’로 분류되고 있다. 난민 문제가 세계화되고, 전쟁이 세계화된 시대에 우리는 ‘국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국가 안보의 중심이 국경이 되고, 국경을 지키기 위한 전쟁, 마치 국경이 없으면 국민의 안전도 보호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안보 (human security)로 생각을 전환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마치 하느님의 나라가 국경으로 이루어지고 지배되는 나라가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져 지속되는 것처럼 말이다.
          국제 난민 인권 문제에 올바른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기독교가 극복해야할 가장 큰 문제가 ‘이슬람 혐오주의’이다. 이슬람 혐오주의는 십자군 전쟁과 오스만 트루쿠 제국, 이슬람 제국들과 국경 분쟁 등의 역사적 경험때문에 서구 사회에 항상 존재해 왔지만, 이제 이 혐오주의는 유럽과 북미를 넘어, 기독교 세력이 강한 한국에서도 확산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슬람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알지 못 하는 것에 대해 집단적으로 혐오하고, 그 혐오에 편견을 더 하고, 모든 이슬람 교도들을 테러리스트로, 여성혐오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은 기독교 사랑의 정신과 거리가 먼 것이 아닌가?
          퀴어 문화 축제가 준비되던 지난 여름,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영국의 ‘나라를 걱정하는 기독교인들 Christian Concern for Our Nation’의 대표인 안드레아 윌리암스 (Andrea Williams)가 한국에 전하는 메세지라는 동영상이 공유되었다. 윌리암스의 메세지는 간단했다. 한국이 차별 금지법을 받아들이는 순간 동성애자들과 이슬람교도들이 거리에 넘쳐나서, 한국도 영국처럼 기독교인들에게 지옥이 될 거라는 경고였다. 동성애와 이슬람이 하느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두 가지로 표현하는 것도 비논리적이지만, 이슬람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지옥에 살게 될 거란 것도, 역사적 근거가 없는 주장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 이슬람 문화권 안에 기독교 교회는 오랫동안 존재해 왔고, 기독교의 이슬람 박해와 이슬람 혐오주의가 팽배해 지기 전에는 두 종교가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오히려 윌리암스의 주장을 뒤집어 보면, 기독교 세력이 강한 곳이 무슬림들에겐 지옥이다. 기독교와 같이 제도화된 종교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해서,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만든 것이고, 항상 만들어져 가는 것인데, 오히려 인간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 제도의 노예가 되어서, 사랑이 아닌 증오를 전파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스리랑카의 알로이시우스 피에리스 (Aloysius Pieris) 신부는, 진정한 개종은 기독교라는 종교로의 개종이 아니라, 모든 부조리한 억압으로 부터의 ‘해방 (liberation)’으로 개종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An Asian Theology of Liberation, 1988) 이슬람이 가르치는 정의와 평화에 대한 내용은 다음 칼럼에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이슬람과 기독교 두 종교 모두, 종교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집단들에 의해, 테러리스트의 종교도 될 수 있고, 서로에게 위협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다.
          지금은 종교와 폭력이란 주제에 대해 필독서 중 하나가 된 “Exclusion and Embrace”에서, 옛 유고 연방의 크로아티아 출신의 신학자 미로슬라브 볼프 (Miroslav Volf)는, 현대 사회에서 죄악이란 타인을 배척 (exclusion)함으로써, 현실을 뒤틀어서 바라보고, 이렇게 뒤틀려진 현실 속에 살면서, 공포심을 가진 채, 타인을 향해 증오와 폭력으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볼프에 의하면 구원은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 타인과 평화로운 공존을 통해서 오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타인에게 열어 보이는 어려운 길을 걸으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이시고, 열어 보이신 것처럼 타인도 똑같이 사랑하시고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통해서도 온다. (Exclusion and Embrace: A Theological Exploration of Identity, Otherness, and Reconciliation, 1996) 볼프의 구원이란 관점에서 보면, 난민과 우리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난민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난민들을 끌어 안으면서 우리가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어쩌면 기독교인들 모두는 이 세상의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여행자들이 아니라, 국경을 열어달라고 문을 두드리는 ‘난민들’이란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살면서 하느님 나라를 이루어 나가려고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하느님 나라를 그리워 하고, 이 땅에 주인이 아니지만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난민들 말이다. 우리가 난민들이란 사실을 망각한 채, 국경을 폐쇄하고, 지구의 주인처럼 살면서, 종교적으로 인종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난민이라 부르고, 우리 땅에 발을 딛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고유한 신분을 져버리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 교회가 난민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종교적 인종적 타자들을 끌어 안으면서, 스스로 사회에서 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신 것처럼, 스스로 타자가 되어, 그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 기독교인들에게 열린 구원의 길이다. 


<에필로그>
          인천 국제 공항에 가면, 난민들을 위한 임시 수용소 (detention center)가 있다. 주로 아프리카와 중앙 아시아에서 어려움 끝에 한국에 도착한 사람들이, 한국 정부에 망명 신청을 하고, 난민 자격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는 곳이다. 한국의 난민 심사는 절망스러울 정도로 까다롭고 기간도 길며, 이 임시 수용소는 침구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감옥같은 곳이다. 그나마 난민 자격을 얻지 못 하면, 전쟁으로 폐허가 된 고국으로 쫓겨 나거나, 다시 지루한 법정 싸움을 이어 나가야 한다. 기독교 교회는 오랜 동안 난민들을 보호하고, 정착하는데 도움을 준 전통이 있다. 미국의 많은 교회와 교단들이 미국 정부에게 시리아 난민들을 더 받으라고 압력을 넣고 있고, 자신들의 공간을 난민들에게 제공하겠다고 서원했다. 한국 교회가 이들 교회 운동에 동참하여, 난민 인권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한국 국경 안에 들어와 있는 난민들의 이주에 적극적 관심을 표현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관심이 일어나면, 한국 정부도 쉽게 난민들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전쟁 동안, 우리도 수많은 난민들이였음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베트남 난민들을 바다로 내보낸 책임이 있음을, 중동지역 전쟁에 우리도 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 웹진 <제3시대>

  1. http://www.unhcr.org/5575a78416.html [본문으로]
  2. (Anna Swanson, “The Big Myth about Refugees: Refugees Can Be an Investment Rather Than a Burden,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wonkblog/wp/2015/09/10/the-big-myth-about-refugees/?postshare=207144581581941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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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은 접경지대(Frontier Distirics)

① Prologue - 지구화시대, 황새들과 함께 살기




정나진



      ‘난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특별히 ‘시리아’ 난민들에 관한 뉴스가 연일 언론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 이후 일이다. 아일란의 죽음은 역사적 죽음이 되었다. 그후 유럽연합은 지지부진하던 ‘난민쿼터제(유럽연합 회원국의 인구와 경제력 등에 따라 난민을 강제로 할당하는 제도)’ 시행에 합의했고, 난민 추가 수용 불가 입장이었던 영국의 총리도 “시리아 유엔 캠프에 있는 난민 수천 명을 추가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다. 개개인들의 관심 또한 높아졌다. 시민들은 난민 루트에 서서 “웰컴”이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환영하기도 하고 축구팀은 “Wir helfen(우리가 돕겠습니다)”이라는 완장을 차고 경기를 뛰기도 했다(독일의 대표적인 우파 잡지 <Bild>의 파퓰리즘적 후원 광고라는 비난이 거세지만). ‘난민’이라는 단어 자체를 낯설어하던 지구 반대편의 한국에서도 ‘국내 난민 신청 승인 빈도와 난민들의 처우’ 등에 관한 분석과 르포 기사가 빈번해졌다. 

터키의 해변에서 발견된 세 살 아기 

난민 아일란 쿠르디(Eilan Kurdi) 를 추모하며 

(그림의 글씨 내용은 터키어로 

“인권이 더 이상 유린되어서는 안된다!”)




            독일 뮌헨의 한 역 앞에서 난민들을 환영하고 있는 독일 시민들                     독일 분데스리가 축구팀이 차고 있는 "Wir helfen" 완장

                              (출처 : 짤쯔부르쿠자이퉁)


      난민의 비극적 희생은 계속 있어왔다. 아일란의 죽음 한 주 전에는 역시 시리아 난민들로 추정되는 71구의 시신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국경지대의 버려진 냉동차 속에서 발견되었다. 그 시신들 중에는 4명의 아동도 있었다. 브로커들을 통해 무리하게(사실 자국으로부터의 탈출을 선택한 이후 무리하지 않은 루트는 없다) 탈출하다 배가 전복하는 등의 사고로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달리하는 일들도 빈번히 있어왔다. 북아프리카에서 유럽까지의 가장 짧은 루트인 일부 지중해 구간은 사고가 하도 많이 나서 ‘통곡의 바다’, ‘난민들의 무덤’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이다. 내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동유럽과 중동, 아프리카 등지에서 넘어오는 사람들은 정착국에 와서 난민 지위를 받기까지 수많은 위험과 생존의 위기를 겪기 마련이다. 최근 들어 이러한 난민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식어가고 처우 또한 미비해져왔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세 살배기 난민 아일란의 조용해보이는 듯 하지만 그래서 더 충격적이고 처참했던 죽음은, 난민들을 서로에게 떠밀기에 바빴던 유럽 각국에게, 또 일상의 거리에서 난민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던 개인들에게,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존엄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난민’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그동안 지각하지 못했던 일상이라는 그림의 ‘난민’이라는 배경이 살아 꿈틀거리는 것에 대한 갑작스런 자각의 표출일 것이다.  




  그런데 실은 이주국에서 ‘난민’이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고 정착을 하기까지는 참으로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국제협약 상의 ‘난민’에 대한 규정[각주:1]부터가 그 판단을 모호하게 한다. 규정에 따르면 난민은 망명자인데,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인 박해로부터의 망명의 이유를 가져야 한다. 자국으로부터의 탈출에 성공한 난민은 1차적으로는 차별 없이 난민보호소에 가게 되겠지만, 거기서 망명 신청을 하게 되면 그 때부터는 자국에서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인 이유들 중 하나로 박해를 받았다는 지난한 자기변론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들은 이주국의 주관에 따라 난민 지위 획득 적격자/부적격자로 판단된다.(난민 자격 획득의 문은 종종 이주국의 예산과 사회분위기 등의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커지기도 좁아지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독일이 난민의 급속한 유입에 대응하기 위해서 난민 수용 방안을 다시 정하고 있다는 기사가 새로 뜨고 있다.[각주:2])


                 북아프리카에서 바라본 유럽의 모습

   (‘2006 세계보도사진전’ 사진 부문 1등 작품 ‘빛과 그림자’)


       난민 지위를 인정 받았다 해도 그 사회에서 어울려 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이미 난민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은 시작부터 따가울 때가 많다. 수없이 떠도는 이주자들 중에 도대체 어디까지가 ‘난민’인가 하는 물음을 묻는 순간, 눈앞의 난민에 대한 관심과 관용은 멈칫하게 된다. 연민과 관용은 보통은 ‘나보다’ 불쌍하고 처참함 앞에서만 발휘되기 때문이다. 미디어에서 보는 터키 해변가의 아기의 사진과는 달리, 내 삶의 현실 영역에서 직접적으로 마주치는 이방인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냉정해지기 일쑤이다. 내가 낸 세금이 허비되고, 나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존재는 아닌지, 더 나아가서 그들이 정말로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박해를 피해 온 자들인지 그들의 순수성(?)을 의심하고 심사한다. 난민을 비꼬는 말로 ‘이주쇼핑’이라는 말이 있다. 현대의 난민들은 이동하면서 어디가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보호국이 될지 정보를 얻으며 움직인다. 과거의 보트피플이 일단 바다로 나가서 외국국적의 배를 무작정 기다렸던 때와는 달리, 요즘에는 GPS와 핸드폰으로, 그리고 산업화된 브로커들을 통해 그러한 정보를 확인하고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회적 시선과 문화적 이방인으로서의 여러 제약들은 그들이 사회 안에 쉽게 어우러지지 못하게 하고, 결국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뭉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일종의 게토 현상에 대해 사회는 또다시 그 그룹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가지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남쪽으로 날아가는 황새 두 마리(사진: 김성호(한겨레신문))


    얼마 전 신문에서 충남 예산에서 멸종 위기에 놓인 황새를 다시 번식시키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는 기사[각주:3]를 읽은 적이 있다. 흥미로웠던 것은 황새의 습성과 황새가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의미였다. 텃새이면서 철새이기도 한 황새는 한국전쟁을 치르며 아름드리 나무가 많이 파괴되어 둥지를 틀 곳이 적어지고, 농약과 화학비료의 사용이 늘면서 환경이 파괴되어 그 수가 점점 더 줄어들다가, 1971년을 끝으로 멸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해 황새는 일본에서도 멸종된 것으로 알려진다.(텃새인 황새는 한국과 일본을 한 터전으로 삼으며, 때로는 철새로 조금 멀리 러시아 연해주 지방 등지에서 날아오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황새를 복원하는 일이 곧 전원생태계를 복원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황새는 날개를 펴면 2미터나 되는 먹이 피라미드의 최상위 포자식자[각주:4]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야만 서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황새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황새를 방사하는 것을 넘어 농약을 쓰지 않는 생태적인 농사를 지어야 하고, 하천이나 습지 같은 자연환경도 친환경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결국 황새가 살고 있다는 것은 그 지역의 생태계의 균형이 깨지지 않고 다른 다양한 종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뜻이며 황새의 야생복귀는 황새 뿐만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건강한 자연 환경 전체를 만드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황새 이야기를 읽으며, 난민을 포함한 이주자들이 곧 황새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난 이들이 선택해서 찾아온 곳이라면, 어느 정도는 그만큼의 가치가 이루어진 사회일 것이기 때문이다. 황새가 사는 마을이 풍요로운 생태계의 상징인 것처럼 이주자들이 함께 살 수 있는 사회 또한 풍요와 환대의 표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의 건강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마치 황새가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서 단순한 황새 방사를 넘어서서 생태계 복원이 먼저 되어야 되는 것처럼, 더 나은 삶을 위해 온 이주자들이 자국민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제도적 장치와 함께, 이주자들에 대한 자국민들의 시선과 의식도 함께 변해가야 할 것이다.  

      세 살 배기 난민 아기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관용과 연민의 준비가 된 마음이라면, ‘타인의 존재에 대한 부정이 적대[각주:5]’일 때 그 반대로 타인의 존재에 대한 인정인 환대는 출생과 더불어 사람이 되는 모든 인간 생명에게 '신원을 묻지 않는 환대'[각주:6]여야 한다. 난민 ‘조차도’ 받아들이기를 꺼려하는 국가적 상황에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제도적 난민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으로 일상에서 만나는 개인의 삶에게라도 한 발짝 나아간 질문을 하고 싶다. 왜 ‘난민만’ 받아들여야 하는가? 나(우리)는 타자의 욕망의 실현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고 판단할 자격이 있을 만큼 (하늘 아래) 타자에 대한 존재 우위를 가지고 있는가?  

      독일의 지르마르 가브리엘 부총리는 끊임없이 몰려드는 난민들에 대한 대응과 정착에 대한 정책을 이야기하면서 ‘위대한 도전’이라고 표현했다. 그 도전은 정책과 제도를 넘어서는 환대와 통합[각주:7]의 문제를 포함한 것일 것이다. 환대와 통합의 문제는 제도와 정책이라는 거시적인 내용도 포함하겠지만, 그러나 시작은 개인이 마주치는 일상적인 미시의 공간에서부터일 것이다. 2009년 이후 한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한 이가 만이천여명이나 된다. (그러나 그들 중 4.2% 만이 난민으로 인정되었다.) 또한 한국에는 이미 약 200만 명의 이주민이 살고 있으며 이제는 길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언젠가는 어쩌면 지구화된 세계 속에서 어느 곳의 이주민이 될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우리는 지구화 시대 ‘황새’들과 함께 어우러져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 필자소개

  글쓴이는 상호문화신학(Intercultural Theology)을 전공으로 지구화, 공간, 이주 등에 관심하며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고민하고 있다. 사람들과 오순도순 함께 사는 것이 꿈이다.


ⓒ 웹진 <제3시대>



  1.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의 사회적 집단의 구성원이거나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위험 때문에 국적국 외에 있는 자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 또는 받을 것을 희망하지 않는 자, 및 상거소(常居所)를 가지고 있던 국가 외에 있는 무적 국자로 그 국가에 돌아갈 수 없는 자, 또는 돌아가기를 희망하지 않는 자(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 IA(2) 참조) [본문으로]
  2. http://news1.kr/articles/?2447094 [본문으로]
  3. “조홍섭의 물바람 숲: 황해도 연백평야에도 황새 복원을”, 한겨레신문, 2015년 9월 14일자. [본문으로]
  4. Berger의 종의 분류(1997)에 따르면 우산종(umbrella Species)이라 한다. 몸집이 큰 종이 필요로 하는 면적의 서식지를 보전함으로서 그 서식지에 함께 살고 있는 수가 많고 크기가 작은 다른 종들이 자연적으로 함께 서식할 수 있으므로 종 다양성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새로운 개념이다. [본문으로]
  5. Karl Smith, 『정치적인 것의 개념』, 7장 정치이론과 인간론 [본문으로]
  6.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209쪽. [본문으로]
  7. 사실 ‘통합(Integr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조차도 불편하다. 그동안의 대부분의 다문화 정책의 내용이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동화(assimilation)’를 요구해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서로의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뒤섞임’을 뜻하는 우리말 ‘어우러짐’을 지향하고 싶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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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難民, Refugee)

 

이상철
(Chicago Theological Seminary / 윤리학 박사과정)

 

J는 탈북자이다. 나이는 25, 신장은 162-3cm 정도로 남자로서는 작은 키이고, 턱뼈가 유달리 발달한 강인하고 초롱초롱한 눈매를 지닌 청년이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3년전이었다. 우리학교(시카고 신학대학원) 한인학생회 주관으로 채플실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초청강사로 그가 왔었다. 북한의 실상과 탈북과정등을 이야기 하면서, 북한 관련 필름을 보여줬는데 많은 미국 친구들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 또한 그랬다. 그 후로 나는 그를 우연찮게 2번 더 만났고, 지금은 내가 몸담고 있는 이민교회 청년부 회원이다.

 

어느 정도 나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지고 난 이후, 그는 지도를 펼쳐놓고 하나씩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13살 때 두만강을 건너 중국을 떠돌아다녔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다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북한으로 들어가 시간을 보내다가,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 다시 북한을 탈출한 이야기, 중국을 다시 떠돌다가 어느 선교단체를 만나 그곳에서 5년간 기거하면서 주님을 영접했다는 이야기, 후에 중국본토를 종단하여 황하를 건너고, 메콩강을 지나 태국에서 망명신청을 했다는 이야기, 태국에서 한국 or 미국으로 망명지를 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택했던 이야기등등.

 

학창시절 지리시간이나 역사시간에 배웠던 나진, 선봉, 두만강, 연변, 북간도, 청도, 북경, 황하, 메콩강 등등의 지역을 지도에 새기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J를 보며 나는 무슨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었다. 그는 미국으로 망명에 성공했고, 망명하자마자 미국 영주권을 받았으며, 영주권 취득 후 5년 만인 올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래서 행복하단다.

 

 

미국 시민권자 J가 어느 날 내게 오더니

 

J: 목사님, 중국(연변)에 다녀오려구요

I: ?  

J: 아버지를 보고 오려고 합니다 

I: 어떻게? 

J: 브로커와 연결이 되어 북에 있는 아버지와 8년 만에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서 보겠다고 말했습니다  

I: 어디서 만나겠다는 건데? 

J: 브로커를 통해 아버지가 두만강을 건너 연길로 나오면 제가 기다리고 있다가 만나는 겁니다  

I: 그게 가능하니? 

J: 몇 가지 위험요소가 있지만 가능합니다. 돈이 좀 들지만

I: 잡히면?  

J: 글쎄요~ 미국 시민권자인데

I: “미국이? 너를? 웃기지마!” 

J: 그래도, 이제는 못 참겠습니다

I: 너는 그렇다 치고, 너의 아버지가 잡히면 어떡하니?

J: ……

I: 참아! 가지 마! 

J: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J는 중국으로 갔고, 아버지는 못 만났고, 브로커는 연락이 두절이고, 돈만 날리고 다시 열흘 만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한가지 소득이라면 두만강 건너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며 그곳 사람들을 보고 온 것이 그나마 위안이란다. 그러면서, 내게 작년에 단행된 북한의 화폐개혁 후에 발행된 모든 북한의 지폐와 동전을 모은 화첩을 선물이라고 내밀었다. 두만강변에서 판매하는 것을 사왔다고 했다. 김일성, 천리마동상, 개선문, 김일성생가뭐 그런 그림들 위에 1000, 2000, 5000원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을 갖고 있으면 국가보안법 위반인가? (누구 아는 사람 있으면 알려주시기를) 하마터면 자기가 알고 있는 두만강변 비밀 루트를 통해 북으로 건너갈 뻔했다는 말을 J는 마지막에 덧붙였다.

 

그는 그곳의 뭐가 그리 그리운 것일까? J가 알고 있다는 두만강변 비밀루트는 정말 안전할까? J는 어떻게 자신 안에 있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증오를 동시에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날 들었던 생각이었고, 그 생각들 때문이었는지 그날 밤 나는 두만강변 비밀루트를 건너다 적발되는 악몽에 잠이 깨었다.


 

미국에서 인간을 분류하는 몇 가지 방법에 관하여

 

미국은 알다시피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너무나 잡스러운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오기에, 그들은 나름대로 국경을 넘어오는 인간들에 대한 검열시스템을 잘 갖추고 있다. 일단, 나 같은 유학생들에게는 F-1 비자를, 합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H 비자를 제공한다. 전자가 학교에서 외부자의 신분을 보증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회사가 그()의 신원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 밖에 종교인들에게는 R비자, 무슨 각종 연구원에게는 J비자, 그리고 여행객들은 여행비자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

 

이보다 나은 신분상태는 영주권자이고, 영주권 취득 5년이 지나면 시민권 신청을 할 수 있다. 미국사회에 정착했다 함은 영주권 이상의 신분 취득을 의미하고, 흔히 그린카드로 불리는 영주권 쟁취를 위한 갖가지 정보와 속임수와 탈법과 묘책이 횡횡하는 사회가 미국사회이다. 엄격히 말하면 영주권, 시민권자는 이민자, 그 외 나머지 신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행자라고 볼 수 있다. F-1, H, J 비자 모두 미국체류가 만료되는 기간이 명시되어 있기에 그렇다.

 

그리고, 미국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을 언급할 때 빠뜨려서는 안 되는 계층이 불법체류자이다. 이들은 엄연히 존재하나 카운트는 안된 채, 미국 지하경제(3D업종)의 상당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이다. 세계인구의 5-6%밖에 안 되는 미국이 세계 에너지의 35% 이상을 사용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손길과 쓰레기를 필요로 하겠는가? 보이지 않는 그 허드렛일들은 어김없이 멕시칸, 아시안 불체자들, 그 밖에 세계 곳곳에서 국경을 넘은 사람들의 자리이다. 그리고, 이민국은 어느정도 불체자들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그들을 색출하여 추방한다. 데리다는 신자유주의 국가들에서 지하경제의 운용을 위해 암묵적으로 불체자를 허용하고, 선거때가 되면 보수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그들을 내치는 증상을 일컬어 갱신된 인종주의(a renewed racism)’[각주:1]라 불렀다. 그렇다면, J와 같은 난민은 어떻게 분류될까?


우리에게 난민은 누구인가?

 

문득, 톰 행크스가 나왔던 <터미널>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동유럽 크라코지아 출신의 젊은이가 뉴욕 JFK공항에서 입국을 거부당한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도중에 구데타가 발생하여 조국이 없어진 것이다. 떠나온 곳이 없기에 입국을 거부당하고, 돌아갈 나라도 없기에 미아가 되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에게 허락된 장소는 오직 공항 터미널 안이다. 기표가 제거된 인간의 운명을 낭만적이고 로맨틱하게 이 영화는 그리고 있지만, 실제 그 상황은 사회라는 상징계속 질서에 기대어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죽음과도 같다.

 

라깡에 의하면, 나의 나됨은 타자의 시선에 얼마나 충실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타자의 시선에 예민하고 충실하다는 말은 나의 존재는 타자들과의 섞임과 어울림과 차이속에서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난다는 말이다. 나의 기표가 타인들의 행렬에 뒤쳐지지 않고 충실히 따라갈 때, 비로소 타자는 나를 나로 받아들이고, 그때 비로소 나는 나!’라고 외칠 수 있다.  

이렇듯, 현실의 세계는 무수한 기표들의 연쇄와 차이에 의해 운영되는 시스템이다. 이상철 혹은 한국인이라는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상철은 철수와 영희가 아닌 이상철이어서, 한국인은 일본사람, 중국사람이 아니라는 차이, 그것이 한국인임을 이상철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톰 행크스와 J는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여 입증시켜 줄 기표, 즉 크라코지아와 북한이라는 기표가 사라진, 빗금 그어진 주체, 즉 난민이다.  

 

영어로 난민에 해당되는 말이 refugee(:a person who has been forced to leave their country or home, because there is a war or for political, religious or social reasons)이다. 국가의 강제에 의해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이유로 쫓김을 받은 사람, 혹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자유를 찾아 도망친 사람, 아니면 도망쳐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타국을 여행하다 다시 조국으로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여행자와도 다르고, 자신이 태어난 조국을 등지고 떠났다는 점에서는 이민자와 비슷하나, 조국의 전복을 꿈꾼다는 점에서는 이민자와 다르다. , 그들 난민은 나라 밖에 산다는 측면에서는 외부인이지만, 조국의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젼을 여전히 대망한다는 측면에서는 내부자이다.

 

 

신자유주의와 난민

 

우리가 흔히 난민하면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사진전이나 신문기사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보트피플을 떠올린다. 그리고, 우리는 동구 사회주의 몰락 이후 다시는 이런 냉전의 희생물인 난민은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예상도 했었다. 하지만, 탈냉전 이후 오히려 난민 발생은 급속하게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보스니아와 코소보 사태 등으로 대표되는 각 대륙에서 발생하는 민족분규와 종교 분규, 최근 들어서는 이상 기후와 천재지변으로 인한 환경난민도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난민의 이유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인한 부작용이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전지구적으로 전개되는 자본의 세계화 전략은 취향의 평균화, 기호의 표준화, 선택의 획일화를 낳았다. 21세기는 얼핏 개성과 개별을 찬양하는 것 같으나 오히려 개체를 자본의 운영이라는 전체성의 깃발아래로 군집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여기 오리지널 구찌 가방이 있고, 그 주변에 짝퉁 A, 짝퉁 B, 짝퉁 C가 놓여 있다고 가정하자. 오지지널을 살 수 없는 사람은 짝퉁 C에서 짝퉁 B, 그리고 짝퉁 A로 자신의 욕망을 키워나가며 오리저널를 향한 꿈을 키워나간다. 옛날에는 우주표 가방도 있었고, 쓰리세븐 가방도 있었는데, 이제 우리는 오직 명품으로 가방 선택의 기준을 표준화 평균화 획일화 하였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젝은 유물론과 정신분석학을 같은 차원으로 이해하면서 이 물음에 답을 한다. 잉여자본과 잉여쾌락은 같은 원리여서, 자본주의가 자본의 잉여를 계속 산출하면서 작동되는 것처럼, 인간 정신 역시 욕망의 잉여를 계속 흐르게 함으로서 유지된다. 신자유주의는 에 대한 욕망의 매카니즘을 내재화한 변종 바이러스와 같다. 그리하여, 그동안 터부시되어 왔고 은밀했던 에 대한 욕동을 더 이상 부끄럽지 않게 손가락질 당하지 않게 한다. 전에는 누군가 까놓고 돈과 물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속물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지금은 그런 것을 감추고 숨기는 사람이 솔직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라 평가받는다. 나의 욕망을 끝없이 발현하여 그에 걸맞는 물적토대를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이 시대 최고의 미덕이고 경쟁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공약이나 인물에 대한 검증 없이, 오직 돈벌게 해주겠다!’는 말만 믿고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었다. 원칙과 명분, 소통그런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또한 신자유주의는 전 시대의 다른 보수적 체제와는 다르게 자신에게 해가 되는 집단과 세력에 대해서도 너그럽다. 아니, 오히려 그 적대자들을 자신들의 뜰 안으로 초대한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나꼼수>의 경우가 그렇다.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실랄한 조롱과 멸시와 욕설들을 통해, <나꼼수>는 대중들로 하여금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냉소적 거리두기를 제공하고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이것이 보수의 진화 혹은, 신자유주의적인 게임의 법칙이라면?

 

우리는 이러한 냉소에 너무나 익숙하다. 이명박이든, 조용기든, 한나라당이든, 조선일보이든, 한기총이든 우리는 그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그들의 몰상식과 파렴치와 무식함에 대해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들을 조롱하며 엿을 먹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다. 마치 마스터베이션 같다. 지젝은 바로 이점을 경계한다. 신자유주의라는 대타자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방정식안에는 이미 대중들의 냉소와 그것의 적당한 사정(射精)까지 다 계산되어 있다. <나꼼수> 정도의 냉소주의는 단지 우리에게 체제를 향한 배설의 욕구를 말초적으로 만족시키거나, 체제에 대한 무의식적 편견을 확인시켜줄 뿐,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못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여전히 신자유주의와 아무런 대립없이 부자가 되기 위해, 자기의 계급을 배반하며 자발적으로 그 체제에 참여하고 있다면 말이다. 그 대립을 진정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의 체제에 대한 냉소는 오히려 그 체제를 작동케하고 강화시키는 기재에 불과하다.[각주:2]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신자유주의를 거론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세계화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이해관계와 복잡하게 얽히면서, 오히려 냉전시대 때보다 더 확고한 전쟁의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국익을 위해서라면 세계화된 시대의 세계시민은 촌스럽게 정의, 평등 같은 전시대의 유물에 연연하지 않고, 통 크게 주판알을 튕길 줄 알아야 한다. 더 이상 무슨 이념이, 신앙이 자본과 욕망의 잉여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 결과 자원 확보를 위한 국지전이 일반화되고 이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은 테러가 되며 그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더 큰 군대가 동원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의 정점이 바로 테러와의 전쟁으로 미화된 미국의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이고, 그것의 완성이 빈라덴과 후세인의 최후였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 유일하게 현재 드러나는 증상은 아프카니스탄에서 발생한 200 만명의 난민과 이라크에서 생겨난 150만명의 난민들이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와 난민 사이에서 발생하는 함수이다. 그렇다면, 세계시민들은 현재 이러한 난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대한민국과 난민


OECD 30
개국 회원국 인구 대비 난민 비율은 1000명당 2명이다(2009년 기준). 스웨덴이 인구 1,000명당 8명으로 가장 높은 비율이고, 독일은 1,000명당 7, 영국은 1,000명당 4, 미국은 10,000명당 8, 일본은 100,000명당 1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200,000 명당 1명의 난민을 보호하고 있다. 단연, 최하위다. 독일에는 59 8천명의 난민이, 미국은 27 5천명, 영국은 26 9천명, 스웨덴은 8만 명, 네덜란드 7 6천명, 스위스 4 6천명, 아일랜드 1만명, 룩셈부르크에 3200명의 난민이 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268!. 

  

한국은 1992 난민협약 및 의정서 가입한 이래로, 2000년도엔 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UNHCR) 상임 이사국 선출되었다고 한다. 1990년대 이후 김영삼-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아시아에서 드물다는 정치적 민주화 과정과 더불어 경제의 급격한 성장은 대한민국의 선호도와 신용도 상승으로 이어졌고, 2002년 월드컵과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과 반기문 UN 총장 배출 등 어딘가 모르게 우리나라가 외국인들이 보기에 나이스했는지 난민신청 건수가 꾸준히 증가하여 2009년엔 난민 신청자 2491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다 개뿔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2009년 한국의 인구대비 난민 비율은 인구 20만 명당 1명으로 OECD 가입 국가 중 최하위다. 1992년에 난민협약과 의정서에 동의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에서야 겨우 1명의 난민만을 인정했다. 2009년에 이르러 74명의 난민을 인정한 것을 법무부에서 홍보하면서 진정한 호혜평등 어쩌구 저쩌구~”, “떠오르는 아시아의 허브! 미주알 고주알~” 무슨 인천 공항선전도 아니고아니, 어쩌면 그들은 난민을 항공사업과 연계시키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난민센터를 영종도에 짓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정말 기막힌 발상이다.    

 

 

에필로그:  국경의 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豆滿江)을 탈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사(巡査)

왔다 ―― 갔다 ――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학창시절 배웠던 김동환의 <국경의 밤>이라는 장편 서사시중 첫 장이다. 그 당시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이 시에서 두만강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건널 수 없는 강이고, 여전히 건너야 하는 강이라고… 100년 동안 세상이 그토록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두만강은 변함없이 그 모양 그 모습이다. 그래, 세상은,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우리 앞에는 여전히 체제가 가로막아 놓은 강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고, 그 강을 어떻게 건널지를 놓고 여전히 갈등하며, 그 강 너머의 세계를 꿈꾼다. 블라블라~ 지금 돌이켜보니 참 순진하고 철없던 시절의 생각이었다. 


얼마 전에는 생각을 바꿔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우리가 그 두만강이었고, 외투 쓴 순사였고, 철조망이고, 폭압적인 체제이고 편협한 이념이었다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를 넘어가는, 혹은 우리에게 넘어오는 그들에게 그토록 가혹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좀 어딘가 오바같다.

 

요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2011년 두만강은 여전히 민족의 비극 내지 원죄의식을 지시하는 주인기표임과 동시에,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념대결의 상징인 그곳에서 돈이 될만한 것이 뭘까?’를 놓고 고민하는 욕망의 대타자일런지 모른다. 그러기에 얼마 전 바뀐 북한의 새로운 화폐가 국경에서 기념품으로 거래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고, 탈북한 사람들 혹은 탈북을 시도하려는 애달픈 사람들을 놓고 온갖 상품이 뒤에서 거래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아직까지 건재한 이념의 장벽과 새롭게 빠른 속도로 번지는 욕망의 장벽을 뚫고 탈출은 계속되고난민은 이어진다.

ⓒ 웹진 <제3시대>


  1. Jacques Derrida, Ethics, Institutions, and the Right to Philosophy, Trans. Peter Pericles Triphonias.(Maryland:Rowman and Littlefield, 2002), 140. [본문으로]
  2. Slavoj Zizek, The Sublime Object of Ideology, (New York: Verso, 1989), 28-30를 참조하라.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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