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리아의 경고




김나미

(미국 Spelman College 교수, 종교학)




     카나리아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새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 광부들이 광산의 터널에 들어가서 작업을 하기 전에 터널 안으로 먼저 날려 보낸 새도 카나리아이다. 카나리아는 오염이 되었거나 독성이 퍼져있는 공기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광산의 터널안으로 날려보낸 카나리아가 돌아오면 터널안의 공기가 광부들이 일하기에 안전하다고 한다. 그러나, 만약 카나리아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도 되돌아 오지 않는다면 그 광산안에는 독성의 공기가 만연하여 그 독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광부들이 일할 수 없는 환경이라고 한다. 요즘엔 광산에서 더 이상 카나리아를 사용하지 않지만, ‘광부의 카나리아’라는 표현은 계속해서 쓰이고 있는데, 여기서 카나리아는 뭔가 위험하고 심각한 상황이 곧 닥칠 것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바드 법과대학 역사상 유색인종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종신교수로 임명된 라니 귀니어 (Lani Guinier) 라는 법학자가 제랄드 토레스 (Gerald Torres)와 공저한 [광부의 카나리아] 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인종(race)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것 처럼 사회 구성원들을 대우하는 정책이나 이론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과연 어떤 “힘” (power) 을 갖고 써야 그 사회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묻고 있다.[각주:1] 이 책에서 귀니어와 토레스는 미국 사회의 소수자인 유색인종들을 카나리아에 비유하면서, 미국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인지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여러 유색인종들이 자유롭게 호흡하면서 잘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사회의 소수자들인 유색인종들이 자유롭게 제대로 숨을 쉬면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라면 사람들이 살만한 괜찮은 사회이지만, 만약 유색인종들이 인종차별과 다른 부정의한 구조 때문에 숨막혀 하면서 살아도 사는 것 같이 않게 살고 있다면 그것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사회라는 것이다. 유색인종들이 잘 살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면 그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제도에 대해, 특히 민주주의를 재점검하고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내의 인종문제를 제대로 다뤄야 한다는 것을 ‘광부의 카나리아’로 비유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뉴욕에서 에릭 가너 (Eric Garner)라는 흑인남성이 길거리에서 담배를 팔다가 경찰에 의해 목주위의 호흡기관이 제압되면서 (chokehold) 11번이나 “숨을 쉴 수가 없다” (“I can’t breathe”)라고 호소하면서 죽어간 사건이 있다. 어떤 무기도 소유하지 않은 남성이 그저 담배를 판다고, 경찰의 불법 제압방식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은 미국 내의 인종문제와 경찰 폭력의 심각성을 잘 보여주는 한 예이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경찰 폭력에 희생당한 흑인 남녀노소들이 증가하고 있고, 정의를 요구하는 흑인들을 ‘썩어빠진 범죄자’로 취급하거나, 심지어 흑인들이 대다수인 한 도시에서는 납으로 오염된 물이 버젓이 수도꼭지로 흘러 나오는데도 아무도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 대학내에서도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하여 최근 51개 대학의 학생들이 캠퍼스의 진정한 변화를 위한 다양한 요구를 하고 있다.[각주:2] 미국의 유색인종들, 특별히 흑인들은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캠페인에서는 물론이고 미국 공화당의 몇몇 대선 후보자들의 캠페인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 반이민정책과 구호에서도 볼 수 있듯이 최근 더욱 급속히 증가한 반이민정서에 이민자들도 많이 위축되고 시달림을 받고 있다. 또한 무슬림이라면 마치 모두 ‘이슬라믹 테러’와 관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들을 범죄시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 미국내의 유색인종들은 국가의 보호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위협적인 존재들’로 인식되고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비롯해서 미국의 여러가지 제도와 정책이 재점검되지 않는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독에 오염된 공기를 마신 카나리아처럼 숨을 쉴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미국에서 유색인종들이 카나리아에 비유되고 있다면, 한국의 카나리아는 누구이고, 그들이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과연 숨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독성 가득한 공기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사회인가?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독에 오염된 공기에 질식되어 되돌아 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독소’ 조항이 가득한 사회 정책과 제도들로 인해 숨을 쉴 수 없는 카나리아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사회라면 어디서 부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염되고 독성이 가득한 공기를 빨리 제거하지 않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현상은 공상소설에 나오는 디스토피아의 상황과 비슷할 수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세상은 디스토피아로 보이고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인 것처럼 그 반대 개념인 디스토피아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카나리아와 같은 사람들이 편하게 숨쉬면서 살 수 있는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종교철학자인 코넬 웨스트(Cornel West)는 [포스트모던시대의 예언자적 사상] 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즉, ‘개개인이 피어나는것, 번창하는것’을 위한 수단이다. 만약 누군가가 자기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영적, 물질적인 고통을 없애는 노력에 동참한다면 바로 그 사람이 급진적인 민주주의자 (radical democrat)이다.[각주:3] 


 여기서 코넬 웨스트는 ‘급진적 민주주의자’란 민주당(Democratic Party)을 지칭하는 “D”가 아니라 “small d”임을 강조한다. 즉, 민주당이란 정당의 당원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정당의 소속 여부와 상관없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개별인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코넬 웨스트는 급진적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이 바로 모든 개별인들을 평등하고 소중하게 받아들이는 기독교인으로서 행해야하는 윤리적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즉, 기독교인의 윤리적 책임은 나사렛의 예수가 자신과 동일시하면서 가장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 주었던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고통을 없애는 노력에 참여하는 것이다. 타인의 영적, 물질적인 고통을 없애는 데 동참한다는 것은 높은자가 낮은 자를 대하거나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던지는 자선이나 연민의 눈길과 손길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와 타인 한명 한명이 모두 평등한 인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서로의 고통을 줄이면서 개별인들이 “피어날 수”있도록 ‘힘’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몇몇의 능력있고 힘있는 사람들만 살아 남고 대우받는 사회가 아니라 카나리아 같은 사회의 가장 약자들도 건강하게 숨쉬면서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라고 할때 곧 제기되는 반론과 질문이 있다. 즉, 그렇게 약자로 살아가는 것은 그 사람들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해서이고,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사람들을 대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다 괜찮아 질 것이라는 만병통치약과도 같은 ‘긍정의 복음’과 개인의 능력여부를 연결짓는다. 그런데 이렇게 개별인의 부족함이나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로 축소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인주의적 인간관 아닌가.  


    개인의 잘못과 부족함을 탓하기 전에 과연 그 구성원들 개별인들에게 공정한 기회와 공평한 물적/인적/교육적/제도적 자원이 분배되었는지, 아니면 ‘독소’ 조항이 가득한 정책과 제도로 인해서 숨도 한번 편하게 제대로 못쉬게 내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개별인이 “급진적 민주주의자”로서 지닌 “힘”이 무엇이고, 누구와 어떻게 그 “힘”을 써야하는 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물질적이든, 육체적이든, 아니면 정신적이든, 실질적인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과 자신의 고통을 없애는데 동참하는 개별인들의 힘이 모이면 ‘우리’의 힘이 된다. 힘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힘을 넓혀나가는 것, 즉, 혼자만 위로 올라가는 위로의 수직적인 팽창이 아니라 옆으로 수평으로 뻗어나가는 그런 힘을 넓히는 것이다. 그런 힘은, 가진자가 없는 자를 누를때 쓰는 힘, 배운자가 덜 배운자들을 누를때 쓰는 힘, 남자가 여자를 누를때 쓰는 힘, 비장애자가 장애자를 누를 때 쓰는 힘,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누를때 쓰는 힘, 권력이 있는 자가 없는 자를 누를 때 쓰는 힘, 연장자가 연소자를 누를 때 쓰는 힘, 내국인이 이주노동자들을 누를 때 쓰는 힘, 그런 억압의 도구로 사용되는 힘이 아니라 같이 나눌 수 있는 힘, 나누면 나눌수록 많아지고 커지는 그런 힘을 말하는 것이다. 남을 ‘위해서’ 쓰는 힘이 결국은 나를 ‘위하는’ 힘도 되는 것이다. 수직적인 힘을 행사하는 대신에 나누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이 언제 먹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입을 것을 주었고, 따뜻하게 맞았고, 병들었을 때 보살펴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찾아갔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들에겐 그런 나눔이 남들을 의식해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소에 나와 내 이웃들에게 행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별인의 나누는 힘과 병행되어져야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비롯해서 사회의 다양한 제도와 구조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카나리아가 되돌아 오지 않는 독성이 가득한 죽음의 광산에 대해서는 폐광이 한가지 답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폐광’으로 문제들이 해결 될 수 없는 복잡한 곳이다. 일시적 폐쇄나 폐광이 답이 아니라면, 개별인이 “급진적 민주주의자”가 되어 ‘독소’ 조항이 가득한 정책과 구조를 제거하는 노력에 동참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런 길에 어떻게 동참할 지는 윤리적 책임을 질 줄 아는 급진적 민주주의자로서의 개별인의 몫이다. 그러나 카나리아가 되돌아 오지 않는 상황을 외면한다면 카나리아뿐 아니라 결국에는 자신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곧 “숨을 쉴 수가 없다”를 외치며 쓰러지게 될 것이다. 카나리아의 경고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이다.  


ⓒ 웹진 <제3시대>


  1. Lani Guinier and Gerald Torres, Miner’s Canary: Enlisting Race, Resisting Power, and Transforming Democracy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2003). [본문으로]
  2. “Here Are The Demands From Students Protesting Racism At 51 Colleges.” December 3rd, 2015. http://fivethirtyeight.com/features/here-are-the-demands-from-students-protesting-racism-at-51-colleges/ [본문으로]
  3. Cornel West, Prophetic Thought in Postmodern Times (Monroe, Maine: Common Courage Press, 1993), 63-6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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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만들어야 할 길 

: 여성목사 안수와 양성평등의 세상을 향하여





 

김혜란
(캐나다 세인트앤드류스 대학, 실천신학 교수)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2016년 3월 8일 한국에서는 어떤 행사들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카나다에서는 이 날만이 아니라 전후1주일 내내 이 날을 기리는 많은 행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국가 공영 방송인 CBC라디오에서는 매 시간 방영하는 기존 프로그램들이 여성문제를 포커스로 해서 다양한 여성인물과 여성문제들을 다루었고, 여성작가들의 책들과, 여성들이 만든 영화, 음악, 다큐멘터리가 소개되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 열악한 작업장의 환경때문에 발생한 화재로 희생당한 여성노동자들을 기념하는 시위와 궐기로부터 그 기원을 찾는다. 1910년 제 2 인터내셔날 노동 여성회의에서 이 미국화재 사건이 보고되었고 독일의 노동운동가 클라라 체트킨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매년 한 날을 정해서, 전 세계의 모든 여성들이 자신의 평등권과 노동권을 주장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 안이 통과되면서 1911년 3월 19일 유럽과 북미 전역에서 첫 “세계 여성의 날”이 지켜졌다. 1913년 3월 8일로 날짜가 바뀌었고, 사회주의자들과 페미니스트에 의해 여성의 노동권과 평등권을 주장하는 정치적 행사로 오늘날까지 자리잡게 되었다.[각주:1] 당시 한국에서도 이 날이 “국제부녀절” 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어 1920년부터 자유주의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여성지도자들에게 의해 준수되었다. 일본제국주의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1945년 해방까지 공식적인 행사들이 쭉 진행되었다. 오히려 일제강점기간보다 해방이후 국제 부녀절을 지키는 운동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 이유는 해방후 반사회주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사회주의 경향을 띠었던 세계 여성의 날이 소위 용공그룹으로 정부의 의심을 받게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승만정권부터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에 이르기까지 약 40년간 공개적인 행사를 못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이 일어난 이후에서야 본래의 목적을 회복하면서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의 노동권, 인권을 신장하는 매개체로 자리잡게 된다.[각주:2]  

      내가 사는 카나다로 잠시 돌아가보자. 내가 사는 지역은 대평원지역으로 알려진 싸스카추완주다. 카나다 서쪽에 속한 대평원 주 (마니토바, 싸스카추완, 알버타) 에서 처음으로 여성이 참정권을 행사하도록 법안이 통과된 해가 1916년이다. 100주년을 기념하는 올 해가 그래서 이 지역에서 특별히 더 의미가 있다. 토론토가 있는 온타리오주와 밴쿠버가 있는 브리키시 콜롬비아는 1917년에, 다른 동쪽지역 주들은 1918년 1919년에 법안이 통과되었고, 그 여새를 몰아 전국적으로 연방차원에서 1919년에 여성의 참정권이 통과되었다.[각주:3]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서쪽 대평원주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여성의 참정권 문제를 해결했을까? 누구 아니 어떤 지도력이 발휘된 것일까? 여기서 한 기독교 여성을 소개한다: 넬리 맥클렁(Nellie McClung, 1875-1951)은 온타리오에서 태어나 7살때 마니토바주로 이사를 하고 젊은 시절을 보낸다. 독실한 감리교 기독교인—나중에 카나다 연합교회— 이었던 넬리는 의식있는 다른 여성들과 함께 음주로 인해 벌어지는 사회적 문제 (여성 폭력, 실업)를 공론화시킨다. 그러나 여성으로서 이 문제를 정부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부딪친다. 왜냐하면 여성은 법적으로 인간이 아니기에 (women are not eligible persons), 즉, 참정권이 없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목소리는 번번히 묵살이 되었다. 정치적으로 여성의 입장을 담아낼 법제화 기제가 없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넬리는 여성의 참정권, 인간으로서 양성평등권을 위해 지도력을 행사한다. 마니토바주 수도인 위니펙에서 넬리는 창조적이고 해학적, 풍자적인 방법들 (연극)을 이용해서 대중들을 의식화하고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다. 결국, 대평원주인 마니토바주에서 카나다에서 제일 처음으로 여성 참정권을 획득하게 된다. 같은 해 마니토바 옆 주인 싸스카투완과 알버타주가 이 법안을 통과하게 된다 그 후 넬리는 알버타 주로 이사를 하고, 그 주에서도 역시 여성의 인권, 정치적 권리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 특별히 선거권을 넘어서 여성이 상원의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운동을 이끌어 1929년 첫 여성 상원의원을 배출해 낸다.[각주:4]  

       넬리 맥클렁이 이렇게 양성평등을 주장하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예언자적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이 깊게 내재했다. 창세기 1장 26-27장에 근거해서, 남자, 여자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그 믿음,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신학이 넬리의 삶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더불어 넬리와 뜻을 함께 한 대다수 지도자 여성들이 함께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 생활을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넬리는 선도적으로 아무도 걷지 않았고, 상상할 수 없었던 그 길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신학자 캐서린 켈러는 중국 철학자 Lux Xun를 인용하면서 희망을 길과 빗대어 설명한다. “희망은 긍정을 하는 것도 부정을 하는 것도 아니다. 희망은 시골 한 켠에 어느날 나타난 길과 같다. 원래 길은 없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곳을 밟고 걸으면서, 하나의 길이 나타난 것이다.”[각주:5] 희망이란 수많은 이들의 뜻있는 수고과 반복적인 실천, 행위, 운동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귀한 지혜를 말해주고 있다. 즉, 포기하지 않는것, 한번 하고, 그만두는 일시적 행위가 아니라,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과정이 결국 새로운 길, 새 세상을 만든다는 교훈이다.

       2016년은 카나다 연합교회 역사에서 또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 해이다. 올해 2016년은 카나다 연합교회 여성 목사 안수 80주년을 기리고 축하하는 해이기 때문이다. 리디아 그루치 (Lydia Gruchy)는 카나다에서 최초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1923)[각주:6] 카나다연합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여성이다. 리디아 그루치가 여성으로서 목사 안수를 받는 길 역시 험난한 과정이었다. 졸업 후 아무도 가지 않는 교회에서 이미 아주 성공적으로 하고 있었던 목회를 하고 있던 리디아에게 안수를 줄 것을 싸스카추완 연회는 총회에 안건으로 올렸다. 그 1926년 총회는 이 안건으로 발칵 뒤집혔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로 반대와 저항은 컸다. 리디아는 휴거노 (프랑스 개신교인) 출신으로 프랑스 가톨릭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을 갔다가 싸스카추완주로 이민을 온 가정에서 태어났다. 불어가 모국어지만 영어를 배워야 하는 소수민족의 경험을 경험한 리디아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 있는 피난민들(러시아 출신 기독교인들)을 위해 교육을 했고,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해 여러 분야의 목회를 했다. 10년 간의 소위 Xun 철학자가 말하는 희망의 운동을 해서 드디어 안수라는 새로운 길이 만들어졌을 때, 그 길을 처음 딛게 되는 영광을 안은 리디아의 소감은 너무 겸손했다: “나는 안수 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나를 들어 쓰셨고, 교회는 그 하나님께 응답을 했을 뿐이다.”[각주:7] 이 희망의 운동에 애를 쓴 여성들 중에 핵심 지도자는 누굴까? 넬리 맥클렁이다. 그는 교회안에 팽배한 성차별을 이렇게 날카롭게 지적한다. “목회는 너무 어렵다고 그래서 여성은 할 수 없다고, 여성이 목회를 할 경우 교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남성 설교자가 많은 데 굳이 여자까지 설교를 시킬 필요가 있느냐고, 이런 모든 이유가 성서 (사도바울 서신) 에 있기에 정당하다고 말한다. 여성 상원을 배출하는 이 시대에 금녀의 집이 두곳이 있다. 이는 바로 교회와 술집이다.”[각주:8] 더불어 리디아가 신학교육을 받도록 물심양면 애를 쓴 신학교 총장 에드몬트 올리버 (Edmond Oliver, 나중에 카나다 연합교회 총회장을 역임) 등 남성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다. 

       내가 3월의 글 주제로 세계 여성의 날로 잡고 글을 쓰면서 넬리 맥클렁과 리디아 그루치 카나다 여성 기독교 지도자를 언급한 데에는 또 한가지 이유가 있다. 2010년 세계개혁교회 연합 (World Communion of Reformed Churches, WCRC)이 첫 총회를 하면서 결단한 안건이 있는데, 이는 소속된 모든 교회들이 바로 여성의 목사 안수 문제와 성평등의 문제를 진지하고 신학적으로 다루자는 내용이었다. WCRC은 약 8천만명의 기독교인들을 묶어주는 에큐메니컬 연합체로서 전세계 약 100여개 나라의 225개 교단들이 함께 하는 개신교 최대 연합조직이다.[각주:9] 이런 안건이 나오게 된 배경은 명백하다: 교회 안에 성차별이 심각하며,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 교단들이 현저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그 총회 안건을 받들어 지난해부터 다음 2017년 ( 종교 개혁 500주년 기념의 해)를 준비하면서 여성의 목사 안수 문제와 양성평등의 문제를 신학적이고, 성서적으로 다루는 노력들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225개 모든 교단들이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안수를 주지 않는 차별의 장벽을 제거하는 그 희망을 꿈꾸고 있다. 과연 내년 2017년 그 희망의 길이 만들어질까? 종교개혁의 참 뜻을 성찰하고 이어가는데, 여성의 목사안수와 성차별이 어떻게 연관되는가?  

       한 지역의 인재가 불러낸 고통의 불씨가 죽지 않고 동기 세대들에 의해 살아났다. 그렇게 세계 여성의 날이100년이 지난 오늘까지 과거의 의미를 되집고 현재를 성찰하는 기회로 자리매김을 한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한 지도자의 예언자적 희망과 그 희망의 푯대를 함께 들고 걸어간 수많은 지도자들의 발걸음으로 여성목사 안수의 길이 자리매김이 되었고, 우리는 그 단맛을 누리고 있다. 그를 위해 애쓴 우리 선배들의 노고를 기억하자. 그러나 단맛뒤에 씁쓸함이 공존함을 잊지 말자. 우리에게 아니 우리 다음세대를 위해 우리가 걸어내야 할 몫이 있다.  

       이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일은 엄청나게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길이 비뚤어지지 않도록, 아니, 그 길때문에 또 다른 소외와 차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데는 더 많은 이들의 땀이 흘러야 한다. 1916년부터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여성의 참정권이1919년에 걸쳐 일어났다고 앞서 언급했다. 그러나 해당되는 여성은 오직 백인 여성들이었다. 어찌보면 카나다 여성 참정권 운동은 백인우월주의의 잔재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유색인종 여성들과 원주민 여성들은 제외되었고 이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기까지 또 수십년의 피나는 수고를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각주:10] 길은 만들어졌으나 온전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다른 소수들을 배제하는 댓가를 치루고 얻은 길이었다. 우리 신앙의 여정은 그래서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끝내선 안된다.  

       이제 사순절을 보내고 곧 부활절을 맞는다. 이 글을 마치며 안치환의 ‘마른잎이 다시 살아나’ 노래가 떠오른다. 고문익환 목사님은 이 노래를 부활의 노래라고 칭하시고, 평양 봉수교회에서 손수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세계 여성의 날, 여성 목사안수, 양성평등의 불씨를 살려야 할 몫은 이제 우리 세대에게 주어졌다. 마른 잎 다시 살아나 푸르른 하늘을 보는 것처럼, 마른 잎 다시 살아나 이 강산을 푸르게 하는 살리는 일을 위해 부활의 영의 도움을 청하자.  



ⓒ 웹진 <제3시대>

  1. 정유진. '세계 여성의 날'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경향신문. 2015년 3월 8일. [본문으로]
  2. 民族(민족) 民主(민주) 民衆(민중)과 함께하는 女性(여성)운동. 매일경제. 1985년 3월 11일. [본문으로]
  3. http://www.cbc.ca/strombo/news/women-the-right-to-vote-in-canada-an-important-clarification.html [본문으로]
  4. http://www.canadahistoryproject.ca/1914/1914-07-mcclung.html [본문으로]
  5. Catherine Keller, Apocalypse Now and Then (Boston: Beacon, 1996), xiv. [본문으로]
  6. 그 최초 여성 신학생을 배출한 학교가 내가 속한 St. Andrew’s College 이고, 나는 이 신학교에서 리디아 그루치를 기리면서 만들어진 석좌교수자리, 리디아 그루치 실천신학 교수로서 일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본문으로]
  7. Patricia Wotton, “With Love, Lydia: The Story of Canada’s First Woman Ordained Minister,” (Friesens, Manitoba, D & P Wotton, 2012), 114. [본문으로]
  8. Mary Hallett, “Nellie McClung and the Fight for the Ordination of Women in The United Church of Canada,” Atlantis (Spring 1979): 11, 14. [본문으로]
  9. http://new.wcrc.eu.server3.reformiert-info.de/ [본문으로]
  10. http://section15.ca/features/news/1997/05/30/women_take_right_vote/. 유색인종은 1948년, 원주민여성은 1960년에 비로소 선거권을 획득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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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제국주의자 "모세"[각주:1]





김진양

(Ph.D. The 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the Old Testament))




    시카고 루터란 신학교(Lutheran School of Theology at Chicago) 도서관 2층에는 중세기 희귀문서를 보관하는 방이 있다. 15세기에서 18세기에 출판된 책들로 무려 300여권을 소장하고 있고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가 직접 작성한 편지와 그가 번역한 성서도 이곳에 보관되어 있다. 이중 오래된 성서 한 권이 내 눈에 들어왔다. 종교개혁 이전에 출판되었던 독일어 성서다(Koberger Bible, 1483). 15세기 성서의 내용이 궁금해서 페이지를 한 장 두 장 넘겨보는데 한 삽화가 내 눈을 사로잡았다(성서에 삽화가 포함된 이유는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들이 삽화를 보고 성서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삽화는 출애굽기 2장의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출 2:1-10). 모세의 모친이 모세를 나일강에 띄워 보내고 바로의 딸은 모세를 강에서 건져내어 모세를 자신의 아들로 양육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출애굽기 2장은 모세의 모친이 모세를 강에 띄워 보낸 것이 아니라 강가 갈대 사이에 숨겨 놓았다고 한다.


   필자가 이 삽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삽화 오른쪽 중간에 모세가 바로의 머리에서 왕관을 벗기는 장면이 보인다.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출애굽기는 모세가 바로의 왕관을 벗기는 행동을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삽화를 그린 이는 어떤 근거에서 이 장면을 그려 넣었을까? 그 답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책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2:232-36)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요세푸스는 출애굽기 2장을 다음과 같이 의역하였다: 


   때무티스는 모세를 양자로 삼았다. 어느 날 그녀는 모세를 아버지 바로에게 데려갔다. 자신에게 자식이 없기에 바로의 대를 이을 자가 바로 모세임을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데리고 온 이 아이는 강의 혜택으로 얻었는데 신의 성품을 가진 아름다운 아이로서 제 자식으로 삼았고, 앞으로 이 제국을 이어갈 황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녀는 바로에게 아이를 건네주었고 바로는 그 아이를 가슴으로 껴안으면서 자신의 왕관을 모세 머리에 얹었다. 하지만 모세는 그 왕관을 바닥에 집어 던지고 발로 짓밟았다. 이는 애굽 제국에 재앙이 임함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이를 본 애굽의 신령한 학자가 발끈하여 이렇게 말했다. “왕이시여! 이는 하늘이 주는 메시지로서 이 아이를 반드시 죽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애굽 제국은 멸망 할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이 아이를 통해 자신들이 노예에서 해방될 것을 희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때무티스는 모세를 보호하기 위해 모세를 잡아챘고 바로도 모세를 즉시 죽이려고 하지 않았다. 다행히 모세는 바로 딸의 보호 아래서 교육받고 자랐다. 히브리인들은 모세를 의지하게 되었고, 앞으로 놀라운 일이 벌어질 것을 희망했다. 반면, 애굽인들은 모세로 인해 일어날 일에 대해 염려했다. 


    요세푸스의 글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바로가 자신의 왕관을 모세에게 건네주지만 어린 모세는 왕관을 바닥에 던지고 발로 짓밟았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애굽 학자의 경고처럼 애굽 제국의 멸망을 의미한다. 즉 모세의 등장이 애굽 제국의 멸망을 의미함과 동시에 모세는 반제국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것도 함께 명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모세를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놀라운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요세푸스와 비슷하게 유대인 미드라쉬 전통도 모세가 바로의 왕관을 받아 자신의 머리에 얹으므로 모세가 바로를 대신하는 왕으로 해석한다. 이는 모세의 등장이 억압과 폭정의 애굽 제국의 멸망을 초래하지만 동시에 해방과 나눔의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Tanhuma Exodus 8; Midrash Exodus Rabbah 1.26; Midrash Dueteronomy Rabbah 11.10; Yashar Exodus 131b-132b).


    요세푸스는 정치적으로 친 로마 성향을 보였지만 자신의 뿌리인 유대교 문화와 종교의 우월성을 그 어느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대변한 사람이었다. 그의 글 여러 곳에서 로마 제국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흔적이 보인다. 따라서 요세푸스가 묘사하는 모세의 모습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글이 로마제국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지적을 교묘히 빠져 나가기 위해 요세푸스는 모세가 너무 어려 어린이의 장난으로 바로의 왕관을 집어 던진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로마제국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은 요세푸스의 다니엘서 의역에서도 여전히 드러난다. 요세푸스는 다른 예언자들보다 다니엘에 더욱 관심을 보였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다니엘서가 내포한 묵시 종말론적 메시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니엘서 2장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자신의 꿈에서 본 거대한 신상을 소개하고 있다. 정금으로 만든 머리는 바벨론 제국을 상징하고, 은으로 만든 가슴과 팔은 메데 제국을 상징하고, 놋으로 만든 배와 넓적다리는 페르시아 제국을 상징하고, 철로 만든 종아리는 그리스 제국을 상징한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네 왕국은 첫째는 바벨론 제국, 둘째는 페르시아 제국, 셋째는 마케도니아 제국, 넷째는 바로 로마 제국이다(『유대고대사』 [Jewish Antiquities] 10.10.4, §209). 느부갓네살의 거대한 신상 꿈은 세상에 순차적으로 등장한 제국이 하나씩 멸망하지만 마지막에 하늘이 세우는 영원한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묵시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따라서 유세푸스는 다른 모든 제국과 마찬가지로 로마 제국 역시 멸망의 길로 갈 것이라는 로마 제국의 멸망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요세푸스는 로마의 멸망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각주:2]  


   요한계시록 15장 3절은 짐승(로마제국)을 물리친 자들이 유리바다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모세가 부른 애굽 제국에 대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다시 재현하고 있다. 이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애굽 제국과 그들의 신을 물리친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찬양하는 모세의 노래를 연상케 한다(출애굽기 15장). 모세는 이렇게 노래한다: “주님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출 15:18, 새번역). 이렇게 요세푸스의 글에서 발견되는 모세의 반 제국주의적 이미지는 이사야의 예언처럼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묵시적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이사야 65:17).



* 필자소개

    현재 미 연합감리교회 북 일리노이 연회에서 목회, 시카고 루터란 신학대학에서 구약학 전공(Ph.D.), Wartburg College에서 강의


ⓒ 웹진 <제3시대>

  1. 이글은 지난 2010년 8월 9일 필자의 블로그 Old Testament Story에 게재한 글을, “Moses in the Koberger Bible (1483),” 수정/보완한 것임을 알린다. [본문으로]
  2. Louis H. Feldman, Josephus's Interpretation of the Bible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8), p. 652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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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마음을 돌이킬까?



 

민기욱
(GTU 박사과정)


 


       지난 글에서 밝혔듯이 내가 “과학과 신학” 분야를 공부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저널에 글을 한 꼭지 올려서도 아니요, 번역이든 학술적인 글의 출판도 아닌 일반 독자와의 만남과 “쉬운(소통하는)” 글을 통해 글이 나누어지고 응답을 접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일은 현란한 어휘와 사고의 생산에 버금가는 피나는 노력의 산물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 또한 “쉬운” 글이 되길 바라며 과거 어느 지면에 썼던 글의 1.01판 정도 되는 글이니 독자분들의 이해를 부탁드린다. 

       종교인들이든 아니든 우리는 “기도”라는 걸 하곤 한다. 기도는 물론 대상을 전제로 한다. 또한 그 기도의 효력에 대해 상대적이기는 하나 분명 어느 정도의 믿음 내지는 “기대”를 하게 된다. 과연 신은 기도를 들어주시나? 종교인이라면 크고 작은 문제에 직면하여, 특히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순간이 닥치게 되면 누구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마련이다. (잠깐 사고실험을 해보자!) 기도의 순간 잠깐 멈추어 보자. 왜 기도하지? 그렇다. 기도의 효력에 대해 어느 정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가? 항상 신이 들어주셨나? 아니다. 들어주시지 않았던 적이 많다고 불평하는 소리가 크다. 어떤 이는 항상 들어주셨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렇듯 우리는 갈림길에 서게 된다. 갈림길에 서서 우리는 신앙의 정도를 키재기 당할 때가 많다. 기도의 효력에 대한 긍정과 부정이 아닌, 기도의 결과에 대한 우리의 두 반응 사이의 갈림길에서 우리의 신앙이 재단된다. 이럴 때 목회자들은 흔히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반해서, 혹은 우리를 연단하시기 위해서 응답하지 않으신다, 대답하곤 한다. 나도 목회자지만 답답하다. 그것 말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게 뭐란 말인가.  

      그런데 만일 신께서 마음을 굳건히 정하셔서 우리의 기도에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절대불변하시다면 그 때는 어쩔 셈인가? 내가 아무리 호소해도 소용없다면? 더 나아가 기도의 효과가 없다고 판명된다면? 그러나 다행히 어느 누구도 기도의 효과가 전혀 없다고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가끔 과학자 중에 기도와 과학의 관계를 증명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 허나 교회에서도, 과학계에서도 변두리일 뿐이다.  

       나는 한국과 미국 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양자물리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주제를 가지고 논문을 쓰고 출판한 적이 있다. 기초적인 전제는 신학의 패러다임이 자연과학의 패러다임과 궤를 같이 해 오고 있다는 것인데, 양자물리학의 발견 이후 신학도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도대체 양자물리학이 무엇이기에 신학의 패러다임이 변화했다는 것인가? 물리학적 세계관이 바뀌었는데 왜 신학의 렌즈가 바뀌는가? 또한 “변화”했다면 무엇이 변화했다는 것인가? 기도에 대해 말하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양자물리학을 운운하는가? 궁금하지 않은가?

       양자물리학과 더불어 아이작 뉴튼의 고전물리학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철학과 과학을 분리해서 생각하지만 이렇게 분리해서 생각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기껏해야 17세기부터다. 그러니까 철학과 과학이 각각의 분과로 나뉜 것이 400년밖에 되지 않는단 말이다. 서로 나뉘어 각각의 길을 가고 있는듯 하지만 역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칸트의 철학이 뉴튼의 물리학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은 이미 상식이다. 따라서 뉴튼의 물리학을 알게 되면 칸트의 철학이 더욱 쉽게 다가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신학은 어떤가? 신앙의 뼈대가 되는 신학도 마찬가지라고 나는 생각한다. 신학도 당시의 사회, 문화, 사상, 철학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과학의 영향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뉴튼의 고전물리학에 상호 영향을 주고받은 신학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신학은, 신앙의 색깔은 어땠을까? 

       뉴튼의 고전물리학을 떠올릴 때 우리는 흔히 포탄을 예로 든다. 실제로 뉴튼의 물리학을 활용하여 전쟁에서 서로 대포를 쏘아댔다. 정확한 위치에 캐논볼이 떨어져야 한다. 여러 가지 초기 조건, 즉 대포의 위치, 포탄의 무게, 바람의 방향, 바람의 속도 등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필요한 모든 조건을 알게 되면, 그래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다. 이런 기초적인 과학적 전제와 산물이 철학사상에 영향을 끼쳤다. 이렇듯 필요한 초기 조건을 알게 될 때, 나중의 결과를 알게 된다는 것을 “결정론적 세계관”이라 말한다. 이를 신학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뉴튼의 고전물리학에 영향을 받은 철학이, 그리고 신학이 어떤 색깔을 갖게 될까? “결정론적 세계관”이 낳은 신에 대한 생각(신론)을 일컬어 오늘날 “고전적 군주모델”이라 한다. 즉, 고정된 계급 질서 속에서 신의 절대 주권과 전지하신 계획 아래 모든 것이 통합된다. 신의 전능과 신에 의한 예정은 불변하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신의 뜻이다. 그런데 이런 절대적 신에 대한 기존의 상이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직도 “고전적 군주모델”을 통해 신을 이해할 때가 많다. 마치 오늘날에도 화성 등에 우주왕복선을 보낼 때 뉴튼의 물리학을 활용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주왕복선을 만들고 운행할 때 뉴튼의 고전 물리학만을 사용했다간 큰 사고를 당할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시세계를 또한 다뤄야 하는데 이 영역에는 다른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신앙도, 신학도, 교회도 더 이상 예수가 살던 시대 속에 있지 않고,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시대 속에 있는 것도 역시 아니다. 질서가 변했다. 물론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기 마련이지만 시대가 변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갈등하고 있다. 변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너무 빨리 변해도 문제고, 너무 변하지 않고 고집할 때도 문제다. 그렇다면 변화의 속도만이 문제인가? 그렇지 않다. 변화의 방향도 문제 아닌가?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어도 변화로 인해 뭔가 선한 열매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사도 바울이 말했듯이 나뿐만 아니라 “공공의 선”을 위해서 머리를 싸매야 하는 게 아닐까?  

       신학과 신앙은 뼈와 살의 관계다. 뼈가 없이 살로만 살 수 없다. 또한 역도 마찬가지다. “고전적 군주모델”이라는 신학은 어느새 우리의 신앙이 되었고, 교리가 되었다. 뉴튼의 물리학으로 인해, 철학으로 인해, 더욱 탄탄한 시대정신이 되었고, 교회에 영향을 주었다. 교회의 신학은 또한 살이 되어 신도들을 먹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신도 중에 비만이 생기는가 하면 배탈이 자주 나서 피골이 상접하기도 했다. 이때 교회 지도자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운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체질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않다. 음식 상태가 문제였다. 물론 같은 음식을 먹어도 탈나는 사람, 괜찮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심하면 모든 사람이 탈나겠지만.  

       그렇다면 음식의 상태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그 원인이 뭘까? 수많은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세계관과 세계의 변화 상호간에 복잡미묘한 관계가 있겠지만) 세계관에 중대한 변화가 생겼단 말이다. 토마스 쿤이 지적하는 “과학혁명”이 이미 19세기 이전부터 여러 차례 있었지만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과학 다방면에 정말 큰 혁명이 일어났다. 이른바 양자물리학과 상대성원리의 발견이 그것이다. 아인슈타인이라는 개인에 의해 발전된 상대성원리와는 달리 양자물리학은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발전됐고, 오늘에 이른다. 그런데 무슨 혁명일까?  

       “양자물리학을 접하고 놀라지 않는 사람은 양자물리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양자물리학의 세계는 실로 놀랍다. 그러나 오늘날의 거의 모든 문명의 이기가 양자물리학의 영향 하에 있지만 이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양자물리학을 공부하다 처음 만나게 되는 용어는 아마 “불확정성 원리”일 것이다. 뉴튼의 영향 하에 포탄을 쏠 때는 몰랐던 사실이 미시 세계에서 발견됐다. 실험기구의 발달로 인해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미시세계에 이르러 철저하게 무너졌다. 전혀 알 수 없는 영역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이름하여 “불확정성 원리”다. 우리는 단지 불확정적으로, 통계적으로 세상을 알 뿐이다. 그것이 자연의 성격이다. 이런 과학정신이 시대에 영향을 끼쳤고, 끼치고 있다. 이를 교회가, 신학이 비켜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최첨단 전자장비와 통신기기는 교회에서 사용하면서도 실제로 과학정신이 교회에 스멀스멀 이미 들어와 있음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과학기술이 모두 선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고전적 군주모델”을 깨뜨리고 새로움을 주문하고 있다. 이를 불편하다 하여 무시할 수만은 없다.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게 우리의 사명 아닌가? 그렇다면 대화해야 한다.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야 한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사이에서. 

       지난 2월 초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를 이곳 GTU에 초청하여 “과학으로 이해하는 창조세계”라는 주제로 특별강연을 연 적이 있었다. 학우들보다는 외부인들이 훨씬 많았던 강연이었다. 과학을 전공하고 “과학과 신학”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리 도전되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신앙인이자 과학자인 우 교수의 열정과 진지함은 실로 존경스러웠다. 그랬다. 오랫동안 “과학과 신학 독서 모임”을 꾸리고 신학도뿐만 아니라 일반인을 아우르는 지성을 추구하는 모임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때가 된 것이었다. 하여 특별강연을 빌미로 취지를 설명하고 홍보하여 드디어 소수이지만 지난 3월 12일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누구나 공감하듯이 우리는 “과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장회익 교수의 말처럼 “과학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이분법적인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교회에서는 19세기 이전의 신학을 배운 목회자가 21세기를 살아갈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설명하는 “하나님”은 철저하게 지배적이며, 냉정하고 통제적이며 이성적으로서 군주적 모델에 기반을 둔 “하나님 이해”와 기독교의 핵심인 “사랑”과는 상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 과학의 세례를 받은 교인이 겪는 혼돈과 갈등은 더욱 가중될 것이고, 교회에 대한 신뢰는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오로지 감정에 호소하고, 그것이 마치 성령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포장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세속의 음악도, 문화도 이성에 지쳐버린 현대인들에게 감정에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교회가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묻고 싶다. 교회에서 “역사”가 해석되어야만 하듯이 시대 정신인 “과학”도 말해져야 되는 건 아닐까.

       가끔 마켓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계신 분들을 보게 된다. 정성이 대단하다. 그러나 묻고 싶다. “예수를 믿지 않는 분들과 진지하게 세상에 대해 대화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대화”는 결과를 예상하지만 미리 결과를 결정하는 게 아니다. 최종적인 결과를 미리 정해 놓는다면 더 이상 “대화”는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양자물리학의 전제와 비슷하다. 불확정성 원리를 통해 살펴 본 자연의 “실재”는 결코 “결정론적”이지 않다. 내가 생각할 때 하느님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의 하느님은 미래를 결정하지 않으신다. 정해놓은 각본에 의해 우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뉴튼의 결정론적 세계관이 빚어놓은 산물일 뿐이다. 기계적이고 결정론적인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는 하느님에 의해 미래가 결정되어 있다. 우리는 다만 미래를 모를 뿐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양자물리학이라는 체계에 의해 자리를 내주었다. 물론 양자물리학도 한 시대의 산물이겠지만 과거의 어떤 도구보다 더욱 견고하고, 더 폭넓게 사용되는 것도 없을 것이라는 게 현대 자연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인 거 같다. 물론 일관된 범주로 구성된 단 하나의 집합이 인간 경험의 풍부한 다양성을 올바르게 나타내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이는 뉴튼을 극복한 양자물리학도 마찬가지다. 한계를 지니고 있고 부분적일 뿐이다. 다만 “모델”일 뿐이다. 그렇다. “하느님에 대한 모델과 생각”이 “하느님”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신도 마음을 돌이키는가?” 어찌 알겠는가? 우리는 기도를 “대화”, 혹은 “사귐”이라고 배웠다. 그렇다. “대화”는 계속되어야 한다. 서로 마음을 열어 놓고 대화해야 한다. 한 쪽이 마음을 닫아 놓는다면 대화가 되겠는가? 생각해 보시라. 내가 마음을 닫고 있는지, 그분이 닫고 계시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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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 이후의 선교 3]



말이 말 같지 않은 시대의 말에 관하여




홍정호

(신반포감리교회 목사)




맹세의 쇠퇴, 거짓말의 전성시대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알바생을 대상으로 거짓말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알바생들이 1위로 꼽은 사장님의 거짓말은 “일 잘하면 월급 올려줄게.”(28.1%), 알바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하나도 안 힘들어요, 괜찮아요.”(32.0%)인 것으로 드러났다.[각주:1] 남녀를 대상으로 한 ‘연인 사이 거짓말’도 있다. 국내 한 결혼정보업체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자는 “이제 집에 간다.”(44.3%), 여자는 “화 안 났다”(39.2%)는 거짓말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각주:2]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다.


    기꺼이 속아줄 수 있는 거짓말과는 달리 분노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거짓말도 있다. 타인의 삶을 위기와 파멸로 몰아넣는 거짓말이다. 선거철 공약(公約)은 결국 ‘공약’(空約)에 불과하다는 반복 학습의 결과 정치권의 말은 오늘날 한국인이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집단의 말로 인식되고 있다.[각주:3] 또한 비리를 일삼는 이른바 ‘지도층’의 말을 감싸고도는 듯 보이는 형사사법기관들의 행태는 법원과 검찰, 경찰의 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를 낙제점 수준으로 끌어내렸다.[각주:4] 여기에 종교지도자연 하는 이들의 말은 구태여 보태지 않겠다. 믿을 말이 없다. 바야흐로 거짓말의 전성시대다.  


    아감벤(G. Agamben)은 그의 책『언어의 성사(聖事)』에서 우리시대를 ‘맹세의 쇠퇴기’로 명명한다. 말과 사물(사태)과 행위를 하나로 묶어주던 맹세가 쇠퇴한 이 시대를 아감벤은 “인간성이 어떤 탈구 앞에 처해 있”[각주:5]는 위기의 시대로 진단한다. 맹세가 사라지는 한편에는 벌거벗은 삶으로 축소되는 ‘살아있는 존재자’(the living being)의 들리지 않는 말이, 다른 한편에는 책임을 벗어던진 ‘말하는 존재자’(the speaking being)의 공허한 말이 메아리친다. 자기 말에 ‘목숨’을 걸 필요가 없는, 오직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말하는 존재자’의 시대를 떠도는 말은 ‘그냥 하는 말’, ‘하나마나 한 말’, ‘해야 돼서 하는 말’, 즉 빈말이다.


    신앙(신학)의 문제는 빈말이 지배하는 맹세의 쇠퇴기가 ‘독신의 시대’(the age of blasphemy)라는 데에 있다. 아감벤은 “시원적 형태의 독신은 하느님께 가해진 모욕이 아니라 그의 이름을 부당하게 입에 담는 것”[각주:6], 즉 신의 이름을 허투루 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늘에 대고 쌍욕을 해대는 사람보다 입에 발린 말로 찬양하는 사람이 ‘시원적 형태의 독신’에 더 가깝다는 지적이다. 생각해 보니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21)


   오늘날 교회 안의 얼마나 많은 말들이 맥락으로부터, 혹은 말의 사태로부터 분리된 채 허투루 불리고 있는가? 말과 사태와 행위를 하나로 묶어주는 충실한 맹세의 말,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는 말이라야 언어는 성사(聖事)가 된다. 그러니 ‘나는 차라리 입을 다물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이렇게 손가락을 놀리고 있으니, 딱하다고 해야 하나 용감하다고 해야 하나. “의미화의 연관으로부터 풀려난 신의 이름은 공허하고 의미 없는 말, 곧 독신이 되며, 바로 이렇게 의미로부터 떨어져 나와 부적절하고 사악한 용도로 쓰일 수 있게 되는 것”[각주:7]이라는 아감벤의 일침은 전문가로서의 목사 혹은 직업으로서의 신학자의 불가능성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말함과 피함 사이


    빈말, 특히 남을 해할 목적으로 한 거짓말의 병폐를 보여주는 성서의 대표적인 예는 ‘나봇의 포도원’(「열왕기상」 21:1-19) 이야기 일 것이다. 농민 대중의 몰락을 억제하고 그들의 지위 복원에 정치적 관심을 기울였던 요시야 개혁세력의 관점을 반영하는 문서인 「열왕기상」에 실린 이 이야기는 법을 통한 대중의 주체화(김진호)를 시도하는 데 있어서 ‘언어’의 문제, 특히 ‘말’을 매개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한 해석적 개입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그동안 스스로를 ‘말’의 주체로 여겨 온 왕과 귀족과 사제세력의 모순과 기만성을 폭로함으로써 대중을 말의 주체이자 통치의 주체로 세우는 것이 그들 개혁세력의 목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패망한 북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한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가 요시야 개혁세력의 문헌에 등장하는 이유이다.


    나봇의 토지에 대한 강탈은 ‘거짓 증언’을 매개로 교묘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아합이 나봇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자 그의 아내 이세벨이 문제해결사로 나서 성읍의 ‘원로들’과 ‘귀족들’에게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보냈다. 거기에는 이런 ‘지령’이 담겨 있었다.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게 하시오. 그리고 건달 두 사람을 그와 마주 앉게 하고, 나봇이 하나님과 임금님을 저주하였다고 증언하게 한 뒤에, 그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시오.” ―「열왕기상」 21:9-10


    이세벨의 계략은 성공했고, 나봇은 ‘하나님과 임금님을 저주’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 바깥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었다. 아합은 포도원을 거저 얻었다. 무고한 아합을 죽음에 이르게 한 이 일로 ‘이세벨’(Jezebel)이라는 이름은 오늘날까지 서양문화에서 ‘악녀’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세벨의 악행에 대한 고발은 타종교인, 여성, 외국인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성서적’ 근거로 종종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데 페니키아 출신의 이방 여성인 이세벨에 대한 악마화(demonization)가 이 이야기의 주제는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봇의 이야기는 말의 주체로 여겨져 온 이들의 기만성을 폭로함으로써 농민대중을 ‘말’과 ‘법’(통치)의 새로운 주체로 호명해 내기 위한 요시야 개혁세력의 정치적 기획의 연속선상에서 놓인 정치적 우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질문이 생긴다. 이세벨은 ‘그녀의 정의’를 실행한 게 아닌가? 절대 주권자인 왕의 아내이자 종교‧문화적으로 다른 배경에서 성장한 이세벨의 입장에서는 왕의 아내로서의 ‘마땅한’ 권한행사를 포기하면서까지 실익(實益)을 양보해야 할 어떤 명분을 찾을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세벨의 정의는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세벨이 ‘그녀의 정의’를 실행한 것이라면 나봇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그녀는 자기가 옳다고 믿는 바를 실행했고, 나봇은 목숨과 재산을 잃었다.


법의 말과 '아마도'의 정의


    빈말, 혹은 거짓말에 둘러싸인 진실을 헤쳐 정의에 이르는 길이 험난한 까닭은 그 ‘말’이 ‘거짓’임을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하고 절대적인 기준, 혹은 그런 기준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의 고전으로 자리매김 한 『삶으로서의 은유』(Metaphor We Live By)에서 레이코프(G. Lakoff)와 존슨(M. Johnson)은 언어학과 철학에서 주류로 여겨져 온 ‘객관주의’(objectivism)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은유’(metaphor)를 새로운 사고와 행위의 중요한 대안으로 제시한다.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그릇된 것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위험한 것”[각주:8]이었다는 그들의 반성은 참과 거짓의 경계가 분명한 이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현실의 단면에 대한 어떤 숙고를 요청한다.


    법의 통한 대중의 주체화를 모색한 요시야 개혁세력의 ‘꿈’과는 달리 현실에서 법(의 말)과 정의(의 말)의 관계는 어느 한 편의 손을 온전히 들어줄 수 있을 만큼 그리 단순명쾌하지는 않은 것 같다. 법과 정의의 관계는 모호하다. 적어도 그것이 펼쳐진 삶의 관계성 안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보기 전에는 그러하다. 법과 정의의 관계를 숙고한 데리다(J. Derrida)는 “법은 정의가 아니”[각주:9]라고 말한다. “계산의 요소”로 구성되는 법과 달리, 정의는 언제나 “계산 불가능한 것”[각주:10]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의에 관해서는 항상 아마도라고 말해야”[각주:11] 한단다. ‘아마도’의 가능성을 벗어난 정의, 법치의 이상과 동일시되는 정의는 결국 통치자의 독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다시금 통치의 도구로 전락할 뿐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대중을 법의 주체로 호명해내고자 했던 요시야 개혁운동의 실패는 법, 혹은 법의 말을 통한 대중 주체화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성찰의 과제를 우리에게 남긴다.


   빈말, 혹은 거짓말의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아마도’의 정의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드러난 사실은 드러나지 않은 더 많은 진실에 둘러싸여 있다. 면(面) 위에 찍힌 점 하나가 공허(空虛)에 둘러싸여 있듯 겉으로 드러난 한 점의 사실은 드러나지 않은, 혹은 드러낼 수 없는 막막한 진실의 표면에 아른거리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시대의 ‘나봇’, 즉 억울한 죽음을 향해 내몰린 이들에 대한 편파적 옹호는 신학의 마땅한 지향점이다. 여기에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거짓말의 화신인 저 ‘이세벨’의 말을 향해서도 ‘아마도’의 정의를 철회해서는 안 된다. 이미 형성된 ‘올바름’의 잣대로 참과 거짓의 여부를 판단한 채 무책임한 도덕적 비난을 쏟아 부을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비난과 옹호 사이로 난 작은 틈을 헤집고 들어가 거기에서 ‘올바름’의 내용을 구성하는 지난한 길에 나서야 한다. 정의는 법치의 철폐도, 그것의 실현과도 동일시 될 수 없는 ‘아마도’의 가능성에 머문다. 그래서 정의는 오직 목숨을 건 ‘맹세’가 아니고서는 말해질 수 없는 무엇으로 남을 뿐이다. 맹세의 쇠퇴기에 정의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토록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김기석은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제9계명의 의미를 ‘참된 말을 하라’는 적극적 의미로 재해석한다.[각주:12]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에 이르는 참말을 하는 것이다. 참말은 무엇인가? 그것은 ‘법의 말’로 환원되지 않는 말, ‘아마도’의 가능성을 철회하지 않는 말, 그래서 이웃을 살리는 희망의 말이다. ‘법의 말’을 통해 대중을 변혁의 주체로 호명해 내고자 했던 요시야 개혁운동의 이상은 우리 시대에 완수되어야 한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이들, 할 말을 잃어버린 이들이 저마다의 이야기의 등장인물이 되어 제 할 말을 하는 세상을 꿈꿔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장과 처지가 다른 이들을 함부로 비난하지 않는 신중함과 어리석게 옹호하지 않는 지혜가 모두 필요하다. ‘법의 말’을 넘어 참말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기보호를 위해 세워둔 확실성의 옹벽을 철거하고, 타자의 말(증언)이 놓인 맥락 속으로 용기 있게 걸어 들어가야 한다. ‘법의 말’을 넘어서 참말이 도달해야 할 곳은 나와 타자의 삶이 놓인 바로 그곳, 우리가 함께 서 있는 자리이다.


* 필자소개

    연세대학교 학부대학 강사,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객원연구원


** 이 글은 『지금 여기로 걸어 나온 십계』(가제)에 실린 원고의 일부를 수정한 것입니다. 


ⓒ 웹진 <제3시대>

  1. 경향신문, 「사장님 거짓말 2위 “가족 같은 분위기” 1위는?」, 2015. 4. 1. [본문으로]
  2. 한국일보, 「미혼남녀 10명 중 9명, 연인에게 거짓말 경험」, 2015. 12. 9. [본문으로]
  3. 한국일보, 「특임장관실 국민 여론조사 65%가 “사회 지도층 불신한다”」, 2011. 5. 5. [본문으로]
  4. 법률신문, 「법원·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도 경찰보다 낮다」, 2016. 3. 7. [본문으로]
  5. 조르조 아감벤, 『언어의 성사: 맹세의 고고학』, 정문영 옮김, 새물결, 2012, 145쪽. [본문으로]
  6. 앞의 책, 89쪽. [본문으로]
  7. 앞의 책, 93쪽. [본문으로]
  8. G. 레이코프 ‧ M. 존슨, 『삶으로서의 은유』(수정판), 노양진 ‧ 나익주 옮김, 박이정, 2006, 270쪽. [본문으로]
  9. 자크 데리다, 『법의 힘』, 진태원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37쪽. [본문으로]
  10. 앞의 책, 37쪽. [본문으로]
  11. 앞의 책, 59쪽. [본문으로]
  12. 김기석, 『광야에서 길을 묻다』, 꽃자리, 2015, 253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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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작은 도시 공동체 이야기 1]


경로를 벗어나기

: 소모적 공간으로부터의 탈출




 

최규창[각주:1]


 


       20여년전 내가 계획했던 학업을 모두 마치면서 나는 먼저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의 수 많은 겁박에 시달려야 했다. 편하고 자유로운 학교를 떠나 정글과 같은 직장생활에 들어서면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전쟁과 같은 상황에 시달리게 되리라는 것이다. 자신들은 그래서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었지만, 그들의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다. 다만 내가 직면해야 했던 것은 과도한 업무나 피곤함이 아니라 무의미의 전쟁이었을 뿐이다. 기억해보면 매일이 고민의 연속이었던 20대의 삶이 나에게는 더욱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IMF 구제금융 시기를 통과했던 나의 직장생활은 업무가 과도하기는 했지만 정해진 시간 내에 항상 답이 나오는 일이었고, 나름 성취감도 있었기 때문에 선배들의 말처럼 이곳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 메를로-퐁티의 말대로 우리의 의식과 세계는 일종의 '순환적 인과성'을 가지는데, 이는 인간의 의식이 세계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동시에 세계를 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체는 존재하기 위해 다른 대상을 필요로 하지 않아야 하지만, 현상학적으로 우리의 의식은 항상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기 때문에 자기의존성이나 독립성이 성립하지 않는다. 의식과 세계의 관계는 우리의 경험의 지평에서 거시적, 미시적으로 항상 포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런 역동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점점 무뎌져 가는 것을 느꼈다.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 주식회사 또는 자영업을 기반으로 소비를 촉진하는 형태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구성원의 의식과 세계의 인과성 경험을 극히 일부의 시스템 내로 제한하고 그것을 반복시키는 체계였다.  

       인생의 과제가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오늘날 대다수가 살아가는 삶의 패턴은 심각한 모순을 안고 있다. 마치 젊은 시절에는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희생하고, 늙어서는 건강을 일부나마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써야 한다는 우스개소리처럼, 생업이 결부된 일상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의식의 지향성이란 기껏해야 조직이 지시한 과업의 종착점, 또는 보상이나 대가에 대한 기대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 지향성이 미시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을때 우리가 기술적 질서가 지배하는 이 지독한 '무의미의 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한은 그리 길지 않다. 결국 우리는 항상 다른 것, 본질적인 것을 지향하게 되고 그것은 곧 다른 공간에 대한 욕구와 이어진다. 결국 나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경로를 탐색하기로 했다. 그 후 한동안의 방황은 마치 경로를 잘못 들어섰을 때 계속 경고를 날리는 네비게이션 ‘미쓰 김’의 다급한 목소리같은 수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어린 아들을 키우는 아내가 쌀독에서 쌀이 떨어져간다고 슬쩍 내비치는 목소리에 의해 증폭되어, 나에게 더욱 많은 혼란과 고통을 야기시켰다. 그 때 내가 가장 집중했던 것은 무모하게 목표를 높게 설정한 법인사업과 새로운 개념의 공동체 세우기 작업이었다.   

      일상의 틈을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일상은 존재양식이 굳건하고, 경로가 분명하며, 시간과 공간에 의한 자기 분열을 허락하지 않는다. 일상은 의식의 지향성을 제한함으로써 순환적 인과성의 균형을 허물뿐 아니라, 반대로 의식에 의해 포착되는 것도 거부함으로써 어떠한 의미도 명확히 생성되지 못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인간은 늘 인생의 의미를 생각만 하면서 인생을 다 보내게 된다. 경로를 이탈하지 않으면 틈이 만들어지지 않고, 틈이 없으면 의미도 파악되지 않는다. 그리고 틈이 만들어지는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공간은 다시 하나의 ‘전체’로 인식되어 의미를 소거해 나간다. 대략 우리는 10년 단위로 인생이 화살처럼 지나가는 것을 인식한다. 승진, 이직 같은 사회적 역할수행이 대략 그 주기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어떠한 경로 이탈도 일어나지 않는 그 10년은 사실 '하나의 공간'처럼 인식되고, 반복학습되는 습성 외에는 전후좌우의 구분도 의미가 없어진다.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더 이상 동일하지 않은 사건, 나에게 공동체는 그렇게 인식되어야만 했다.   

       보통 기독교인이 일상의 균열을 만들기 위해 시도하는 노력들은 정기적 모임이나 기독교 외부 활동으로 이루어진다. 나 역시 매 주 두 세 군데의 성경공부 모임과 종교/시민사회 영역의 모임, 교회 활동 등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모임’ 수준의 활동은 삶의 변화를 가져올만한 충분한 밀도를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모임 자체의 유지를 위한 에너지가 너무 과다하여 쉽게 지치고 오래 지속되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구성원들의 삶을 죄어오는 삶의 이슈들은 모두가 나누고 공유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이 밀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생각한 것이 바로 주거를 함께 하는 공동체였다.

       처음에 우리는 같은 동네에 모여사는 공동체를 생각했다. 하지만 가정간의 물리적 거리는 공동체의 목적 달성과 반비례한다는 점을 금방 인식할 수 있었다. 서로 길 건너편에 사는 가정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한 이슈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애초에 우리가 계획한 방식이 아니었다. 먼길을 가기 위해서는 천천히 가야 하는 법이다. 결국 우리는 목적의 경중을 떠나 서로 밀접하게 얼굴을 볼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선택했고, 급기야 땅을 사서 함께 들어가 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아무런 경험도 없고 모두 각자의 직장 일로 정신없이 바쁜 이들이 추진하는 일이 순조롭게 될리도 없었거니와, 건축주가 종일 감독을 해도 스트레스로 10년 늙는다는 집짓기를 우리 여섯 가정이 기한 내에 해 낸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대가로 우리는 매우 혹독한 시련을 맞았고, 꽤 큰 재정적, 시간적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수 차례 공사가 중단되고, 모두가 전재산을 날릴뻔한 위기를 여러 번 맞이했다. 하지만 이 경험은 반대로 서로 굳건한 연대를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합리적 대안이 도저히 만들어지지 않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집단적 무의식 속에 어떤 공통적인 경험을 가지게 된다. 일종의 체념이나 비움의 경험인데, 이것을 함께 겪는 사람들이 가지는 연대는 특별한 것이었다. 그 절정에 있었던 것이 바로 분양 사기를 당한 일이었다. 공동체 구성원 여섯 가정이 살 집을 제외한 나머지를 분양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들마저도 속일 수 있는 고도의 심리술을 가진 이들에게 주택을 몇 채 넘겨줘버리는 실수를 범하게 되었다. 진정한 사기는 언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황과 맥락을 이용하여 신뢰의 공간을 만들고 입체적으로 대상을 공략하는 기술에서 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말은 맥락과 증거로 분석할 수 있지만, 입체적인 공간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한번 만들어진 신뢰의 공간은 말에 의해 허물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기는 여지없이 성공하게 된다. 결국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우리는 이 사건을 복구하기 위해 2년간 기나긴 법정 싸움을 하게 된다. 결국 공동체는 '시작이 미약했던’ 수준이 아니라 마이너스 상태로 출발하게 되었다. 나중이 ‘창대하게’ 되리라는 보장 역시 전혀 없었다. 우리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 

       정말 중요한 문제는 당시에도 너무나 흔했던 공동체라는 말의 의미를 우리는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 점이었다. 공동체 자체가 하나의 공간이지만, 공동체란 구성원들이 각자의 공간을 점유하는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고 거기서 인간으로서 인정을 획득한다. 그리고 그것이 공동체안에서 이루어지면 그 공간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 괴테의 유명한 싯구처럼 우리에게는 '들판과 숲과 바위와 정원이 언제나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대가 그곳들을 장소로 만든다.’ 각자가 가진 자기 몫의 ‘공간'은 공동체를 통해 ‘장소'로 전환된다. 따라서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선호하던 급진적 형태의 경제 공동체를 지양하고, 각자의 공간을 존중하고 공통점을 찾아가는 작업을 거치기로 결정했다. 보통의 기독교 공동체가 가지는 정언적 질서와 분명한 목적의식을 일단 소거하는데는 많은 고통과 불안이 뒤따랐다. 우리는 경로를 벗어나 다른 길을 만들어보기로 한 이상 이 작업을 '언젠가는 다시 큰 도로와 합류할’ 성격의 안전망 안에 두는 것도 포기하기로 하였다. 각자의 공간과 삶의 여정을 존중한다는 것은, 어떤 구체적인 정체성에도 귀속되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임의적 특이성’(아감벤)을 불러내는 일이기도 했다. 굳이 윤리적이거나 신학적, 정치적이지 않아도 각자에게 주어진 길로 ‘참 인간됨’을 성취해 갈 수 있는 기반으로서 공통의 장소를 제공하는 (루소의 이상과 같은) 유기체적 소시민 사회로서의 공동체를 생각했던 것이다. 분명 우리 개개인은 각자에게 주어진 윤리적 명령에 나름 충실했다고 생각하지만, 공동체의 목표가 명확하게 ‘선교’를 향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부담을 주었다. 정말 벤야민이나 아감벤이 말한대로 ‘세속화’(적극적으로 교리적 삶을 노정하지 않는다는 면에서)와 메시야적인 것이 긴밀한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면, 각자가 자기의 존재방식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담아낼 수 있다면, 이것이 공동체의 새로운 경로가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생각이 반드시 정당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기존의 공동체들이 지속적인 모델로 남지 못하는 한계는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서로를 존중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규칙이나 강령이 없이 공동체를 시작해 보기로 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존재방식을 존중하면서도 모두 공유하고 있는 교집합 지점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세워가야했기 때문에, 결코 큰 규모를 지향할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연결하는 느슨하고 질긴 끈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어쨌든 공동체는 우리가 모두 사람이라는 점 외에, ‘공동’하는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운동의 중요한 요소인 구현 가능성, 지속 가능성, 재현 가능성의 문제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공동체 기획은 ‘연대’를 통한 가능성의 문을 여는 것이었다. 흔히 기독교인의 중요한 정체성의 하나를 세상과 타자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라고 가정하지만, 이것은 사실 가능하지 않은 이상이다. 보통 환대를 사적 공간의 포기와 연결짓기 때문에 이러한 의지에는 한계가 명확히 설정된다. 김현경(<사람, 장소, 환대>)이 말하듯, '사적 공간의 개방'과 '공공성의 창출'은 혼동되어서는 안된다. 공공성의 창출은 오히려 사적 공간을 보호하고 확장시킬 수 있다. 따라서 개인이나 한 가정은 진정한 환대와 용서를 하나의 이상으로 받아들여야 하겠지만, 공동체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마치 기독교 신앙이 현실과 무관한 ‘종말'을 현재의 실존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도록 하듯이, 무조건적 환대의 불가능성도 공동체라는 구조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것의 가능성’이며, 원칙론적 규범에서 실천 가능한 규범으로의 전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임의적 특이성’을 추구하는 나의 공동체에서, 나는 실재로 한 가정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 심리적,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공동체가 구현해 내는 것을 목격하였다. 이것은 현재 우리의 생활세계가 쳇바퀴로 고정되어 있는 거대한 체계 속에서, 일종이 균열과 새로운 가능성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일종의 플렛폼으로서의 공동체 개념이다. 마치 컴퓨터의 운영체계(OS)나, 휴대폰에 내장되는 미들웨어처럼, 일단 구동되면 어떤 기능이든 어플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지는 그런 상황과 비슷하다.   

       이렇게 우리는 주거공동체를 짓고 13년을 넘게 살았다. 사실 삶은 이론보다 훨씬 강력하고 실증적이다. 심지어 삶에서 귀납적으로 구축된 이론 역시 (칼포퍼가 논리실증주의를 비판하듯이) 앞으로의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보장이 없다. 복잡한 이론들도 대부분 단순한 사례에서 비롯되고, 그것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체계화되어 갔다. 프로이트도 (이후 많은 수정을 거쳤지만) 몇 명의 아이들을 분석한 자료로 그 유명한 '유아의 성욕에 관한 이론들'을 만들어 냈다. 나는 공동체에 대한 현대 맑스주의자들의 이론들이 복잡한 체험에서 나왔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것을 참고하거나 용어를 빌릴 수 있을 뿐, 반드시 실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없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구체성의 체험이지 이론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글에서는 공동체가 지속되어 온 과정을 중심으로 내가 경험한 공동체의 동력과 삶의 이야기를 담아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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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그 곳에 오래 매여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 수치가 세상변혁이라는 불가능성에 대한 부담과 지나친 민감함에서 나온 혼란이었음을 깨달은 후에 나는 비로소 자연스럽게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 톱니바퀴로부터 일탈하여 나의 공간을 만들어 가는 소박한 대안적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십여년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시작된 법인사업과 생활대안운동은 아직 고전을 면치 못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그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가치들을 생성해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웹진을 통해 앞으로 4차례에 걸쳐 그 가치생성의 과정을 일부 나눌 예정이다. (주) 포리토리아 대표, <고통의 시대, 광기를 만나다> 저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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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 적응기



김난영

(한백교회 교인)

 


       지난 가을 우리 부부는 아이 둘을 맡길 기관에 ‘합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야 했다. 대학입시도 아니고 얼마나 좋은 곳에 보내려고 유난을 떨었나 싶겠지만, 우리의 유별난 노력의 이유는 교사진이 우수하다는 구립 어린이집이나 병설 어린이집도, 다양한 특기활동이 있는 민간 어린이집도, 원어민 교사가 상주하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기 위함이 아닌, 오로지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기관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집근처 수락산 입구에 자리 잡은 공동육아어린이집을 선택하게 되었다. 등원을 위해 가족소개서를 써서 제출하고, 온 교사진과 부모면접관에 둘러싸여 30여분의 심층면접 끝에 그것도 2년에 걸친 두 번의 도전 끝에 입소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 주 아이들과 부모의 적응이 시작되었다. 부모가 조합원이 되어 운영주체가 되는 이곳에서 아마(엄마아빠의 줄임말로 공동육아에서 부모를 일컬을 때 쓰는 말)는 각자 다른 소위에 소속되어 첫 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방모임’이라고 해서 아이가 소속된 방의 교사와 부모가 함께 둘째 주에 모임을 갖는다. 그리고 다른 방에 소속된 아이의 부모, 교사와의 교류를 목적으로 하는 ‘통합방모임’이 있고, 아이의 친구 집에 부모가 동원되어 왕래하는 마실문화도 활발하다. 두 아이를 보내는 우리 부부는 방모임도 두 번, 통합방모임도 두 번, 내가 어린이집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린이집 사람들을 왜 이렇게 자주 보나 싶다.   

      이번 주는 첫 주라 소위 모임에 다녀왔다. 하루 먼저 다녀온 남편은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다. 안건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처리해나가는 회사식 회의에 익숙한 남편은 뭔 할 얘기들이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한다. 중요한 일도 아니라 단순히 찬반의 결정만 해도 좋을 걸 너도 나도 꺼내놓는 이야기들이, 평일 퇴근 후 시간을 할애해 참석하는 그의 피로도를 높이는 듯하다. 두세 시간의 긴 회의 끝에는 한 잔 기울이는 뒤풀이 자리도 꼭 있으니, 소위 모임 첫날 남편은 평소 야근 때보다 더 늦은 시간에 귀가했다.   

       나는 아이들의 적응기를 위해 지난 사흘을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집에서 보냈다. 아이들은 마냥 행복하다. 이곳의 별명문화가 낯간지럽고 교사와 어린이간의 평어문화가 낯선 나와는 달리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은가보다. 맨날 산에서 놀고 엄마가 말리는 흙놀이, 물놀이를 추운 계절에도 맘껏 할 수 있다는 게 제일 좋은가보다. 

        사흘의 짧은 경험을 통해 육아공동체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아이의 첫 기관 적응, 즉 사회활동의 시작은 ‘곁을 내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아이의 곁에는 항상 엄마가 있는데 그 곁을 선생님 혹은 친구들에게 내어주는 것, 그게 첫 단계라고 한다. 아이는 엄마 품을 벗어나 사회 속으로의 도약을 위해 자신의 곁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을 울고불고, 애착자인 엄마가 아닌 다른 이에게 곁을 내어주기 위해 애를 쓴다.. 

        아이가 떠나갈 내 곁, 우리의 곁을 잠시 돌아본다. 지하철에서 잠시나마 편히 쉴 수 있는 내 자리, 밥벌이를 위해 지켜야하는 내 자리만 바라보지 옆에 누가 있는지는 관심이 없다. 지금의 척박한 삶은 곁에 관심을 둘 여유가 없다. 고개를 살짝 돌리기 위해서는 내 시간을 내려놓아야하고 내 것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 모인 육아공동체의 낯설고 불편하고 귀찮은 모든 만남과 의사결정 과정은 내 아이가 아닌 그 곁의 다른 아이의 삶에 관심을 갖기 위함이 아닐까. 우리도, 우리의 아이들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꺼이 곁을 품고 가는 좋은 부모,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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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3.22 12:2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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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곁을 내어 준다는 것.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이스라엘 와인 이야기

 



박여라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같은 배에서 나온 이웃종교이지만, 유대교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훨씬 많음을 전제하고 이 글을 시작한다. 그나마 아는 것도 띄엄띄엄 단편적이고 겉핥기 수준이다. 이웃이나 동료들이 지키는 절기를 통해 알게 된 특별한 관습이나, 전해들은 이야기, 영화, 역사로 알고 있는 탈무드, 홀로코스트 정도다. 유대교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와인이 그들의 종교예전과 일상생활 속에서 늘 있어왔다는 점에서 좀 더 들여다보고 싶어서이다.


    이슬람교까지 해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이 세 자매(또는 세 형제, 혹은 삼남매?) 종교는, 같은 지역에서 뿌리를 함께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인에 대해서는 각자 아주 다르게 발전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을 세운 예언자 마호메트(570-632) 당시나 중세에 무슬림이 세차게 영역을 넓혀나가던 때까지도 이슬람교에서 지금처럼 철저히 음주를 금했던 것은 아니다. 꾸란(코란)에 와인이 네 번 언급되는데, 긍정적인 것부터 부정적인 것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중세에 이슬람 점령지에서도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이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마신 기록과 흔적이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후 칼리프 시대를 거치며 철저한 금주로 돌아섰다. (이 분야도 한 번 연구해봐야겠다.) 고대로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든 역사적인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동 아랍에서는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와인소비는 커녕 와인제조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에 가서 신기했던 것 하나는 어지간한 크기의 슈퍼마켓에 가면 유대인을 위한 코너가 꼭 있다는 거다. 미국내 유대인 인구가 대략 6백만명, 전체 3억 인구의 2.2%라고 한다. 뉴욕 주처럼 전체 인구의9% 에 이르는 곳도 있지만, 캘리포니아 유대인 인구는 겨우 3%다. 100명 중 이 3명을 위하여 마치 당연한 것처럼 코셔(Kosher)라 써있는 코너가 따로 있다. 그리고 주류 관련법에 따라 주마다 경우가 다르겠지만, 와인가게에 가지 않고도 코셔 코너에서 케뎀(Kedem)이나 매니셰비츠(Manischewitz) 브랜드 와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미국 북동부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콩코드 포도종으로 만든 와인이라 맛은 대단할 것 없는 그냥 그런 와인이다. 그래도 코셔와인이다. 


    코셔규정은 대략 주후 2세기 정도부터는 지켜왔다고 한다. 히브리 성경에 있는 대로 먹어도 되는 것과 안되는 것에 관한 규정, 이후 탈무드와 랍비 전통에 따라 더 자세한 규정, 논란이 있는 규정 등이 있다. 와인의 경우 ‘이방인'이 만드는 와인은 우상숭배에 쓸 목적으로 만들었거나 그렇게 쓰일 가능성을 지닌다고 여겨, 유대인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만든 와인은 철저히 금했다. 그러나 향신료를 넣고 끓였다거나 저온살균과정을 거친 와인은 우상숭배에도 쓰일 일이 없음이 분명하니 (우상님께도 신선한 와인을!), 그런 경우에는 누가 만들었는지 상관없이 코셔규정에 합당하다. 코셔와인은 처음 포도가 으깨지는 과정부터 발효, 청징(淸澄, 탁한 성분을 걷어내어 와인을 맑게 만드는 과정), 병입과 유통까지 코셔규정에 합당한 재료를 사용하며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이 지휘감독하여야 한다. 


    무슬림이 이른바 ‘성지'를 점령한 7세기 이후에는 와인을 만들지 않다가 1880년대에 이르러서야 다시 이스라엘과 요르단 서안지역에서도 와인을 만든다. 최근까지도 이 지역 와인들은 맛으로 알려진 와인은 결코 아니다. 포도재배도 그렇고 와인만드는 기술도 그렇고 모두 다시 일구어야 했으니 맛을 기대하기는 무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에는 350개 와이너리가 와인을 연간 6천5백만병생산하고 있다. 2014년 세계 와인생산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3배 가까이되는 규모이고 매해 크게 성장하고 있다. 


    작년 11월말 ‘뉴욕타임즈’는 이스라엘 토착품종 ‘마라위'로 만든 와인을 상업와인으로 개발 발매한 와이너리를 소개했다. 이 지역 토착품종으로 와인을 상품화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마라위 와인은 이야기거리가 된 이유는, 현지 대학과 협업으로 DNA 검사를 통해 다윗왕과 예수가 마셨을 고대 와인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내고 복원하려는 프로젝트의 생산품이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있는 내용으로 마라위라는 와인품종을 주후 220년까지 추적해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기사 제목은 ‘이스라엘, 예수와 다윗왕이 마신 와인 재창조를 목표 삼다’였는데, 이 기사를 국내 모일간지에서 ‘예수가 마셨던 포도주 복원 성공… 유전공학의 개가'라는 제목을 달고 그다음날 인용보도하여 좀 거시기했다.) 


    이스라엘에서 만든 와인이라고 자동으로 코셔와인이 되거나 모두가 코셔규정에 따라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세계 굵직한 와이너리에서 마케팅 차원에서라도 코셔 규정에 따라 코셔와인을 만들고 있고, 요즘은 미국 와인가게에서 코셔와인을 찾으면 대개 한두 가지 갖춰 놓고 있다. 맛도 꽤 괜찮다. 


    곁가지 이야기인데, 이스라엘에서는 안식년 규정 때문에 오늘날에도 7년째 되는 해마다 포도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땅을 쉬게 하는 지 궁금했다. 실제로는 포도밭을 남에게 팔아버린다고 한다. 왜냐하면 포도나무는 3년 되는 해부터 와인을 만들 수 있는 포도를 거두기 시작하여 대략 수령 20년까지가 제일 좋은 때인데, 7년째에 나무를 뽑아버리는 일은 경제적으로도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 필자소개_ 박여라

    분야를 막론하고 필요한 스타일과 목적에 따라 한글 텍스트를 영문으로 바꾸는 진기를 연마하고 있으며, 그 기술로 먹고 산다. 서로 다른 것들의 소통과 그 방식으로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미디어 일다(ildaro.com)에 ‘여라의 와이너리’ 칼럼을 쓰고 있다. 미국 버클리 GTU 일반석사 (종교철학 전공) /영국 WSET 디플로마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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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적인 사회에 맞선 당찬 도전장[각주:1]


 

권오윤[각주:2]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013년부터 매년 국제 여성의 날(3월 8일)을 앞두고 ‘유리천장 지수’(Glass-ceiling Index)를 발표해왔습니다. 이 지수는 고등교육과 임금의 남녀간 격차, 기업 임원 및 국회의원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 등을 종합해 점수로 낸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올해까지 4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꼴찌를 찍고 있지요. 작년과 올해에 우리보다 아주 조금 점수를 더 받아 꼴찌를 면한 나라가 있는데, 바로 터키입니다. 

       이 영화는 그 터키의 북동부, 그러니까 수도 이스탄불에서 1천km 떨어진 흑해 연안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합니다. 부모없이 할머니와 삼촌 밑에서 살고 있는 다섯 자매는 여름 방학날 학교에서 돌아오다가 바닷가에서 남자애들과 어울려 놀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자유를 박탈당합니다. 전화나 인터넷 같은 문명의 이기도 완전히 빼앗긴 이들은 칙칙한 색깔의 긴 옷을 입은 채, 집안에서 신부 수업이나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되지요. 

       이들을 옭아매는 것은 낡아빠진 순결 이데올로기입니다. 이 시골 마을에서 젊은 여성이란, 스스로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발산하는 건 꿈도 못 꾸고, 처녀성을 잃기 전에 시집이나 빨리 가야 하는 번거로운 존재에 불과합니다. 영화는 다섯 자매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이에 저항해 나가는 과정을 인상깊게 그려냅니다. 

       어떤 영화의 완성도를 논할 때, 촘촘하게 잘 구성된 서사라든지 기술적인 탁월함, 어떤 장면이 담고 있는 속깊은 의미 같은 것들을 따지게 됩니다. 그런 기준으로 본다면, 적은 예산의 신인 감독 데뷔작인 이 영화를 아주 높이 평가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핵심 테마를 영화적으로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를 기준으로 삼는다면, 이 영화의 성취는 탁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과 세계와의 갈등이 심화되는 과정과 그 해소를 다루는 간명한 플롯, 그리고 공간이나 행위의 연속성보다는 인물의 감정에 초점을 맞춘 과감한 편집이 쟁점을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으니까요.  

       흔히 이렇게 이야기보다 주제가 강조되는 영화에서는 모호한 비유나 상징이 난무해서 관객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잘 짜여진 극적 에피소드보다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장면들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지요. 하지만 이 영화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비유, 그리고 의도가 분명하게 잘 드러나는 설정들을 사용하여 그런 함정을 잘 피해 나갑니다. 

       또한 단순히 문제를 제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순결 이데올로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이면에는 폭력적인 가부장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환기합니다. 이 터키 시골 마을 소녀들의 이야기가 보편적인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면 바로 그런 부분 때문일 겁니다. 

       감독 데니즈 감제 에르구벤은 터키에서 나고 자랐지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외국 생활을 오래했고,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작업해 온 여성 감독입니다.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 역시, 프랑스/터키 합작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올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프랑스 영화를 대표해서 올라갔었지요.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영화가 터키에서 공개되었을 때 꽤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영화 속의 상황이나 배우들의 억양이 터키의 실제 현실과 전혀 가깝지 않으며, 이슬람에 대해 험담하기 좋아하는 서양인들의 시선에 기초한 것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았었죠. (그러나 터키의 시골은 여전히 끔찍하게 보수적이며, 영화 속에 등장하는 새 신부에 대한 처녀막 검사도 실제로 많이 시행된다는 반론 역시 존재합니다.)

       21세기 한국 관객의 눈으로 보기에도, 순결을 잃기 전에 무리하게 결혼을 시키려 하는 설정 자체가 너무나 전근대적이어서 현대에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볼 것이 아니라 달을 봐야 합니다. ’유리 천장 지수’가 보여주듯 우리나라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터키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떠올려 보세요. 

       한국 여성의 전화에 따르면, 2015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에게 살해 당한 여성이 90명, 살인 미수 사건에서 살아남은 여성 또한 95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불과 이틀에 한 번 꼴로, 여성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남성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런 통계를 인용할 필요도 없이,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여성을 남성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대상으로 비하하는 기사나 댓글쯤은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제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한국 남성으로서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사람도 동물이기 때문에, 성적 욕망이 높은 남성이 여성에 대해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합리화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날 동물적 욕망 탓을 하며 스스로를 동물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것보다는,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지속적인 학습과 교정을 통해 인간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참다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차별과 억압을 어떤 방식으로든 정당화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기원합니다.   


ⓒ 웹진 <제3시대>

  1. 이 글은 오마이뉴스의 3월 18일자 기사 <처녀성 잃기 전에 빨리 시집이나 가라? 헐…>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191564&PAGE_CD=C1400&BLCK_NO=4&CMPT_CD=S5011)로 게재된 원고입니다. [본문으로]
  2. <발레교습소> <삼거리극장> <화차> 등의 영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으며, 현재 연출 데뷔작을 준비 중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물 [권오윤의 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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