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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눈 : 바두리에서 설리까지] 여성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II(신윤주)

비평의 눈

by 제3시대 2020. 6. 8.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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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리에서 설리까지] 여성 서발턴은 말할 수 있는가? II

신윤주*

a.     Rebecca Belmore: Fringe (2008)

레베카 벨모어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북부의 선주민 그룹인 Lac Seul First Nation (Anishinaabe) 출신의 종합 예술가(multidisciplinary artist)다. 벨모어는 포스트 식민주의 캐나다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사건들에 주목하고 이를 다양한 예술적 장치를 통해 표현해왔다. 그의 작품에는 엄숙하게 증언하는 목소리와 예리하게 관찰하는 시선, 불의한 일을 당한 자의 자리에서 사건을 해석하는 에토스와 시대의 통증을 온 몸으로 체화해낸 이의 파토스가 서려있다. 때로는 우아하고 때로는 섬뜩하지만 작품 안에 암호처럼 새겨진 시적 은유들은 언제나 참여자의 마음에 충격과 여운을 오래도록 남긴다. 

개인적으로 “Fringe” (2008)라는 작품과 조우한 것은 2019년 늦은 겨울 캐나다 중부 사스카툰에 위치한레이미모던 미술관(Remai Modern)에서가 처음이었고, 같은 해 가을 몬트리올의 현대미술관(Musée d'art contemporain)에서 두 번째였다. 두 전시 모두 “Facing the Monumental” (2018, Art Gallery of Ontario) 의 초대전이었다. 레이미모던 미술관의 3층 전시장 입구 복도에서 처음 작품을 봤을 때 한 동안 자리를 뜨지 못 했던 것을기억한다. 사진이 인화된 상자 안 쪽에 환하게 불이 들어와있는 전구 덕에 작품이 금방 눈에 띄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등의 스티치 때문에, 스티치에 매달아 늘어뜨린 비즈 때문이었다. 

가지런한 붉은 비즈의 행렬이 봉합된 피부 위에 연장된것이 아니었다면, 신체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지 않았다면 충분히 장식적인 미를 드러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런표정도 짓고 있지 않은 여성의 등에서 연상되는 사진 반대편의시선은 언뜻 무심해보이는 프레임 속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깊은 고통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아니, 완다 나니부시(Wanda Nanibush)의 해석처럼 이는 자신이 피해자가 아니라는, 동정어린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몸짓이었을까.[1]

 

© Rebecca Belmore

Rebecca Belmore, Fringe, 2008.

Cibachrome transparency in fluorescent lightbox, 81.5 x 244.8 x 16.7 cm.

National Gallery of Canada, Purchase, 2011.

 

비즈는 북미에 거주하는 선주민[2]들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사물이자 고유의 문화 예술적인 기호로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비즈 공예는 유럽의 정착민들이 북미 대륙을 식민화하기 이전부터 존재했고 선주민들의 영토와 문화가 침식되는 동안에도 지속되었다. 선주민들에게 비즈는 자신들의 불굴의 정신(resiliency)을 표상하는 것이기도 하다.[3] 그러므로 “Fringe” (2008) 속 비즈는 선주민을 상징하는 고유한 코드가 잘못 놓여졌을때에 나타나는 효과로서 제시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벨모어가 “Fringe” (2008) 를 구상한 계기였던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이다: 1980년 11월 24일, 생보니파스 병원의 한 외과 의사는 북부 마니토바 샤마타와 출신의 크리(Cree nation) 여성의 폐 조직검사를 한 후에 수술 봉합선 끝에 유리 비즈 두 개(보도 매체에 따라 두 개에서 열두 개까지 개수에 차이가 있음)를 삽입했다. 외과 의사의 주장에 따르면 의사는 비즈를 넣는 것에 대해 수술 전 환자에게 농담처럼 말을 했으며, 또한 자신은 환자의 비즈 공예 실력에 대한 존경심을 소통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크리 여성 환자는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의사는 당시 해당 병원의 환자였던 한 크리 남성을 통역사로 대동했는데, 이 크리 남성은 비즈에 관한 어떤 대화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고 진술했다. 크리 여성 환자는 사전에 그러한 동의를 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수술 후 병원 직원이 자신의 봉합 부위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을 때 의아해했으며 나중에는 황당하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수술 후 상황에 대해 바로 알 수 없었던 것은 봉합한 부위가 환자의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였고, 거울이 없으면 확인할 수 없는 위치였기 때문이었다.[4]

 

b.     자우녕: 후인마이의 편지 (2010)

자우녕은 사회 안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미술 작가다. 회화, 조형 미술, 사진, 영상, 책 등 다양한 매개를 통해 가려지고 잊혀진 이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작업과 전시의 공간이 곧 이야기의 장소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한국과 세계를 종횡무진하며 작품을 기획하고 구성한다. 자우녕은 사회 안에서 타자화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받아적어 그들을 역사의 일부로 복원하고 폐허 안에서 함께 뒹굴며 퇴색한 듯 보였던 생에서 다양한 빛깔을 찾아낸다. 섣불리 희망하지 않지만 이들의 생을 긍정한다. 레베카 벨모어가 자신의 작품들속에서 포스트 식민주의 캐나다 사회 내 지배 권력의 색으로 백색을 차용함으로써 흰색이 지니는 선한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전복해낸다면, 자우녕은 자신의 작품들 안에서 무지개빛 다채로운 색상을 자주 등장시킴으로써피지배 집단의 이질성과 다양성에서 나오는 힘을 지지적으로 발굴해내는 것이다.

“후인마이의 편지” (2010)[5]는 자우녕 작가의 비디오 아트로 결혼과 함께 한국으로 이주한 베트남 여성에게 일어난 불의한 사건과 연관되어 있다. 작품은 나래이션의 내용을 따라 전개되는데 이는 2007년 여름, 사망하기 전날19세였던 후인마이가 남편에게 쓴 편지를 바탕으로 구성한 것이다. 후인마이가 쓴 편지의 원본은 베트남어로 쓰여졌지만 나레이션은 불어로 입혀진다. 베트남어와 불어가 모두 한국어 사용자에게 있어 소통 가능한 언어의 범위 밖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불어로 다시 쓰여진 나래이션은 타자화된 언어인 외국어가 하나의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에게 등가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비디오를 구성하는 장면들은 베트남에서 치뤄지는 합동 결혼식과 관련된 푸티지(footage)들이다. 영상에는 분홍빛 미래에 대한 꿈으로 한껏 들뜬 베트남 여성들의 모습과 어린 신부들을 다정하게 대하는 어리지 않은 신랑들의 모습, 그리고 한국에서 경험할 현실을 감추는 베일인 듯한 화려한 결혼식 소품들이 편지를 낭독하는 차분한 목소리와 대조적으로 펼쳐진다. 영상이 재생되는 4분 동안 목소리의 배경에 흐르는 것은 음악이 아닌 텅 빈 공간의 소리다. 편지의 내용에는 화자가 낮과 밤을, 다시 밤과 낮을 지내며 쉽게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관계를 두고 오래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편지의 화자인 후인마이는 특정한 인물이지만 영상 안에는 합동 결혼식에 참여한 베트남 여성 다수와 한국인 남성 다수가 비차별적으로 등장한다. 카메라에 잡히는 남성/여성/커플은 셋이기도, 넷이기도, 다섯이기도 한데, 이는 결혼 이주의 보편적인 현실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화자가 국경을 넘어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이륙/착륙하는 비행기와 공항버스, 다른 언어로 쓴 문구가 적힌케익은 한국어를 배워 남편과 소통하기를 바랐던 후인마이의 좌절된 필요와 대조를 이룬다. 영상은 자신의 편지가 베트남어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남편은 편지의 내용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쓸쓸한 말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2007년 6월에 사망한 후인마이는 2006년에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로 47세의 한국인 남성과 결혼식을 올리고 2007년 5월에 한국(천안)에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약 한 달 후인 사건 당일, 남편은 회식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귀가하여 후인마이가 여권과 옷을 꾸린 채 외출복 차림으로 있는 것을 본다. 베트남어로 ‘결혼?’이라고 묻는 말에 후인마이가 ‘아니오’라고 대답하자 사기결혼을 당했다는 생각에 격분하여 후인마이를 살해했다. 사망전날에 작성한 편지의 내용을 통해 함께 생활하는 동안 남편이 자주 화를 냈고 후인마이는 남편과 소통을 하고싶었지만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을 수 없었고 그러나 남편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베트남에서의 생활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본국으로 돌아가 지내며 부모님께 잘 해드리고싶다는 말, 자신은 남편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며 그가 좋은 사람을 만나기 바란다는 말, 그리고 길게 작성한 편지의 내용을 결국 남편이 이해하지 못할 것에 대한 좌절감이 표현되어 있다.[6]

 

c.     서발턴으로서의 선주민과 결혼이주여성

“Fringe” (2008)의 배경이 된 1980년의 생 보니파스 병원 비즈 봉합 사건은 이후 어떻게 다뤄졌을까? 사건이 있은 후 선주민 여성의 가족은 자신들이 속한 커뮤니티의 리더를 통해 해당 병원에 탄원서를 넣었다. 이에병원은 판사 에밋 홀(Emmett Hall)에게 사건을 의뢰했고 이듬해에 다음의 내용을 포함한 판결이 내려진다.[7]

 

이 사건은 사건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향후 일반적인 선주민 보건 시스템의 문제를 다루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병원 및 커뮤니티는 프로그램의 계획 단계에서부터 선주민들의 참여를 더욱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도시 전역의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24시간 통역 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도록 권고한다. 병원 당국은 어떤환자라도 부당한 처우를 받을 경우에 병원의 스텝이 그들의 입장에서 말해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주지한다. 외과 의사의 행동으로 인해 선주민 여성은 모욕감과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당 의사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으며 환자에 대한 어떤 선입견도 없었다. 이 의사는 이미 전국의 언론으로부터 주목을 받는 가운데심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바 병원에서 어떠한 특권도 박탈하지 않아야 한다.

 

판사는 이 사건을 통역사가 없는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문제로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쪽으로 판결의 방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이 사건에 인종차별과 선입견의 문제가 개입되어있지 않다는 해석은과연 정당한지, 그리고 제도의 개선은 이 여성의 모욕감과 수치심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적절한지에 대하여 의문이 남는다. 

레베카 벨모어의 “Fringe” (2008)가 약 30년의 시간 차를 두고 발표된 것은 이 사건이 선주민에 대한 사회적 처우의 부당함이 여전히 동시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시사한다. 1990년 11월, 경찰에 의해 사스카툰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어느 곳에 유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닐 스톤차일드(Neil Stonechild)는 사스카툰의 북쪽 경계 눈밭에서 동사한 채 발견되었다. 사스카툰 경찰은 1970년대 이래로 선주민을 발견하면 차에 실어다가도시의 외곽에 내려다 놓곤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렇게 유기된 사람들 중에는 사스카툰으로 다시 걸어오던 중에 거의 얼어죽을 뻔 한 이들도 있었다. (사스카툰은 평균적으로11월부터 3월까지 최고 기온이 영하에머문다.) 이 일이 보도된 후 캐나다 전역에서 유사한 경험을 한 선주민들의 증언이 이어져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8] 2002년에는 벤쿠버에서 주변화된 여성들-특히 선주민 여성들-을 연쇄 살인한 로버트 픽튼(Robert Pickton)이 체포되었다. 픽튼은 약 20년에 걸쳐 실종되거나 살해당한 65명의 여성 중 26명에 대해 기소를 당했고 6명에 대해 유죄 선고를 받았는데, 감옥에서 잠복 근무를 하던 경찰에게 자신이 49명의 여성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9] 2016년에는 백인 농장주 제럴드 스탠리(Gerald Stanley)가 비거(Biggar, SK) 근교에위치한 자신의 소유지에 무단 침입한 선주민 청년들을 쫓아내는 과정에서 선주민 22세의 청년 콜튼 부시(Colten Boushie)의 머리에 총을 쏴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일 년 반 남짓 소요된 재판의 결과로  2018년 2월, 스탠리는 살인 기소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받는다. [10] 부시의 가족들과 지지자들은 과잉 방어로 인해 발생한살인 사건이 재판부에 의해 강도 사건으로 다뤄진 것으로 보고 사법 정의 구현을 위해 싸우고 있다. 

2006년에 일어난 후인마이 사건 역시 한국 사회 안에서 다른 이름들을 통해 반복되고 있다. 2010년에는20세의 탓티황옥이 한국에 온 지 8일 만에 남편의 구타로 사망했고, 2017년에는 31세의 베트남 출신 결혼이주여성이 자녀들과 함께 잠을 자던 중 시아버지에게 흉기에 찔려 살해되기도 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2007년 이후 남편의 폭력 등으로 숨진 이주여성은 2019년 7월 당시 언론에 보도된 사례만 꼽아도21명이다.[11] 후인마이 사건을 담당한 김상준 판사는 판결문에서 해당 사건을 국제결혼의 명암을 드러내는 사례로보고 결혼정보업체의 파행 및 결혼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수준의 문제를 짚어 화제가 되었고,[12] 이어 충청남도여성정책개발원에서는 ‹충남 여성결혼이민자 인권현황 및 개선 방안 (2010)›을 발표하며 이들이 사회적성원권을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또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침해실태 및대책에 관한 연구 (2011)›를 통해 다문화지원센터 및 결혼정보회사 운영에 관한 개선안을 내놓다. 이 외에도 법률 및 제도적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보고서들이 여러 건 제시되었지만 가정 폭력에 시달리고 살해 당하는 이주민 여성에 관한 보도는 좀처럼 끊이지 않고 있다. 과연 동시대의 서발턴 그룹, 들려지지 않는 목소리를 내는 이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죽음은 다만 제도의 한계 혹은 실패일까. 

 

 

D. 설리이기도 하고 최진리이기도 

 

후인마이 사건에 대한 판결문은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폭력과 소외에 관하여 공감하는 입장에서 작성되었다는점에서 고무적이지만 이는 착한 아내를 측은하게 바라보는 가부장적인 시선에서 기인하는 공감이며 결혼이주여성이 겪는 현실에 대한 기술로 국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디아스포라 여성이 결혼과 가정, 한국사회에 정착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겪는 현실은 한국 여성 일반이 겪는 여러 문제점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디아스포라 여성이 처한 부당한 현실이 마치 결혼이주와 관련된 제도가 가진 어떤 구멍들로 인해 야기된부작용 혹은 사건으로만 보인다면 우리는 사회의 무의식을 관장하는 작동 원리로서의 지배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간과하는 셈이다. 

작동 원리는 국가와 사회 구조 안에 교묘하고 복잡하게 스며있어 여간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지만설령 드러나더라도 마치 ‘방 안의 코끼리’처럼 누구도 다루지 않는 자명한 문제가 되기 쉽다. 마치 김용균의 죽음의 배후에는 산업 안전 보건의 구멍이 있고 그 구멍은 최종적으로 원청 업체의 책임 회피를 용이하게 하는 하청 업체의 사용에 있지만 외주의 문제는 한국 경제의 작동 원리이기 때문에 건드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13]디아스포라 여성들의 죽음의 기저에도 작동원리가 있다. 그것은 장자연과 구하라의 사건을 다루는 판사의 욕망 혹은 이해관계이자 강남역 10번 출구의 살인 사건을 유발한 여성 일반에 대한 통념 혹은 혐오이며 설리와 설리의 죽음을 대한 집단 무의식으로서의 불특정 언론과 댓글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2019년 10월 14일. 최진리/설리(25)가 숨진 채 자택에서 발견됐다. 이날 경찰은 평소 그가 자주 메모하던노트에서 심경 변화를 엿볼 수 있는 글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기 형식은 아니었지만(날짜를 기입하지 않은 메모) 부정기적으로 간략하게 적은 다른 메모들과 달리 노트 마지막에 적힌 글의 분량이 상당했다는 점에서 변별점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경찰은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는 중인 만큼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으나[14] 문건의 내용은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후에 등록된 기사문 중에는 유서에해당하는 글이 없었다는 내용을 명시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간 최진리/설리가 종종 SNS에 올린 포스팅들은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행위였을까, 아니면 독백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가 노트에 길게 적은 마지막 글은 독백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남긴 것이었을까. 최진리/설리의 텍스트는 읽힐 수 있었던 걸까? 바두리의 텍스트가 오래도록 해독되지 못한 것처럼 최진리/설리의 텍스트도 사실은 읽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최진리/설리가 세상을 떠난 후, 수많은 글이 쏟아졌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나 황색 언론이 운영되는 방식이 지닌 근본적 구조의 문제를 지적한 기사와 논평들이 발표되기도 했고,[15] 여성혐오와의 연관 속에서 일련의 사태를 분석한 기사들도 발행되었다[16]. 한편 ‘설리법’이라는 것을 상정한 이들은 댓글을 통제하는 효과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고[17], 경제 계급에 관한 인식을 바탕으로 연예인의 자살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설리의 옛 연인인 최자의 SNS를 찾아가 책임을 묻는 댓글을 남긴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반응들은 최진리/설리의 죽음에 반응하는 사회의 무의식을 드러낸다. 그 안에는 고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침묵하던 목소리도, 고인이 살아 있는 내내 그이를 괴롭히던 목소리도 섞여 있다. 

자신의 신체를 텍스트로 삼아 발화하는 사건은 인식론적 균열을 거부하는 지배 담론의 공간에서 발생한다. 텍스트화된 망자의 신체에는 죽음을 통해서라도 균열을 내고자 하는 완강한 의지가 각인되어 있다. 바두리는 “죽은 배우자를 화장한 장작더미 위에서 수행된 여성의 자살만이” 추앙받을 만한 여성의 자살 형태로 인가된 세계에서[18]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던) 월경을 드러내며, 편지 한 통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여성도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가부장제에서 인가한 명예 너머의 명예도 가능하다는 것을,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다루지 못해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최진리/설리의 죽음 역시 어떤 균열을 내고자 하는 완고한 욕망이었다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월경일을 기다렸다가 죽은 바두리가 자기 몸을 텍스트로 기입한 것처럼 그도 어떤 메시지를 남겨두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들은 최진리/설리를 ‘관종’이라고 불렀고 어떤 이들은 ‘이슈메이커’라고, 다른 이들은 ‘투사’라고 불렀다. 그 모든 이슈와 투쟁의 한 가운데에는 섹슈얼리티와 성역할에 관한 그의 탐색 그리고 SNS 매체(인스타그램)의 개인 계정이 있었다. 처음에는 14살 연상의 최자와 연애를 공개하지 않으려 했지만 연예 언론 매체에 의해 강제로 밝혀진 후로는 대중이 기대하는 수위 이상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계정에 자발적으로 전시했다. 로리타 컴플렉스를 연상시키는 사진의 모델이 되기도 했지만, ‘로리타’가 꼬리표가 되었을 때는 그만 좀 하라며 발끈하는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자신의 다양한 매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태도와 브래지어 미착용에 관한 소신이 만나 생산한 이미지들은 누군가에게 여성해방운동적이라고 읽혔고 누군가에겐 그저 값싼 눈요기거리 혹은 안주거리가 되었다. 한참 선배인 남자 배우에게 ‘~씨’라는 호칭을 썼다가 불특정 다수의 훈계를 듣는가운데, 동료들과 서로를 부르기로 한 호칭을 두고 간섭하지 말라는 의사를 밝였으나, 자신의 팬클럽을 자처한무리가 호소문의 형식을 빌어 이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땐 많이 억울했냐며 어르고 달래는 듯한 제스쳐의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또 최진리/설리는 ‹악플의 밤›을 진행하던 중 “외모 평가를 심각하게 안 해야 할 것 같다”고 정색을 하고 말했지만, 순간 “오늘 좀 예쁘다”는 다른 진행자의 말에 웃음을 터뜨려 역시 “좋아한다”는놀림을 받기도 했다.[19] 열한 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한 후로 이십대 중반이 되기까지 연예 산업에 종사한 그는카메라 앞에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일이라면 이력이 난 아이돌 출신 아티스트 설리였지만 그게 자신의 전부일 수는 없다고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청년 최진리이기도 했다.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러하듯 최진리/설리에게서도 숱한 모순과 균열이 존재했다. 바두리가 그러했듯 최진리/설리 역시 경제적 계급으로는 서발턴 그룹에 속했다고 말할 수없다. 그러나 둘은 젠더에 의해 결정된 지배/피지배 구조 안의 유리벽에 끊임없이 부딪혀야 했다. 고분고분한아이돌에 대한 기대로 치환한 요구는 침묵당한 주체(muted subject)가 되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그가 서발터니티와 서발터니티 너머를 진동하며 자기 목소리를 찾는 과정의 연료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고 사라지는 내적 모순과 균열은 이데올로기의 봉합 불가능성을 끈기 있게 주장했을 것이다.

1926년 인도 캘커타의 부바네스와리 바두리, 1980년 캐나다 마니토바주의 한 선주민 여성, 2006년 한국충남의 베트남 여성 후인마이, 2019년 한국의 최진리/설리를 관통하는 시간과 공간 안에는 (불)투명한 오독과침묵 당하는 성차화된 (비)주체들이 있다. 그들은 목소리는 지배 담론에 포섭되어 있기도 했고 그 어느 곳에서도 들은 적 없는 소리로 발화되기도 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 모두가 서발터니티 너머의 공간을 향해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는 자기 이야기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는 타자(들)이필요했다. 

서발터니티 너머로 향하는 여정은 지난하고 보장되어 있지 않지만 적어도 우리 모두의 손에는 윤리적 선택이라는 힘이 주어져있다자신의 주체적 목소리를 구성해 나가는 것도타자()이라는 거대한 이질성에 귀기울이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것도모두 우리의 윤리적 선택으로부터 시작된다 결단의 언저리 어딘가에서 서발터니티 너머로 가는 차이의 공간이 열릴 것이다.

 


[1] Rebecca Belmore, Facing the Monumental, ed. Wanda Nanibush, (Goose Lane Editions, 2018), 12.

[2] 선주민의 소외 문제는 캐나다 사회가 고질적으로 안고 있는 난제  하나다. 영국 여왕과 선주민 대표들 사이에 맺어진 조약(Treaties) 실제로는 캐나다 정부에 의해 이행되어야 하는데 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이 지켜지지 않았을  아니라 선주민 지정 주거 구역으로 내몰린 다수의 선주민들은 근대적 생활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지역에 거주하면서 오래도록 교육과 의료, 가난의 문제에 시달려야 했다. 손쉬운 통치의 기술로서 피식민 그룹에 자주 도입되는 알코올 등의 제공은 중독으로 이어지고 엄마의 중독이 태아에게, 부모의 생활 양식이 자녀에게 세대를 이어 전수되면서 여러 부작용을 낳아왔다. 그리고 그러한 난제들이 낳은 사회적 문제는 다시 선주민들에게 낙인이되어 백인 중심의 캐나다 사회 안에서 다양한 차별과 폭력을 당하는 근거가 되었다. 선주민들은 오늘도 유럽 정착민들에게 자신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던 땅의 대부분을 빼앗겼지만 캐나다라는 국가의 일원으로서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면서도 언어와 문화와 전통적 가치를지키고 전수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3] Malinda Joy Gray, “Beads: Symbols of Indigenous Cultural Resilience and Value,” A thesis submitted in conformity with the requirements for the degree of Master of Arts, Department of Anthropology University of Toronto (2011): 1-2, accessed April 30, 2020, https://tspace.library.utoronto.ca/bitstream/1807/82564/3/Gray_Malinda_J_201711_MA_thesis.pdf

[4] Belmore, 28.

[5] https://youtu.be/5wx4DyySlvI 베트남 여성의 이름인 Houin Mai 국문 표기  후인마이, 후안마이, 후앙마이 등으로 표기되고 있으나 글에서는 자우녕 작가가 작품의 제목으로 채택한 국문 표기법을 따라 통일했다. 

[6] Accessed April 30, 2020. http://www.law.go.kr/판례/(2007425) 

[7] 이어지는 단락은 니콜 마가렛 마리 리즈의 석사 논문이 인용한 판결문의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Nichole Margaret Marie Riese, “Perceptions of Care: Aboriginal Patients at the Winnipeg Health Sciences Centre,” A Thesis/Practicum submitted to the Facdty of Graduate Studies of The University

of Manitoba in partial MNlment of the requirements of the degree of Master of Science (2001): 53-54, accessed April 30, 2020, https://www.collectionscanada.gc.ca/obj/s4/f2/dsk3/ftp05/MQ62834.pdf

 

[8] Belmore, 11.

[9] Accessed May 1, 2020. https://www.thecanadianencyclopedia.ca/en/article/robert-pickton-case

[10] Accessed May 1, 2020. https://nationalpost.com/news/canada/full-transcript-of-judges-instructions-to-colten-boushie-jury-put-yourself-in-a-jurors-shoes

[11] Accessed May 1, 2020. http://www.korea.kr/news/reporterView.do?newsId=148862713#reporter

[12] Accessed April 30, 2020. http://www.law.go.kr/판례/(2007425)

[13] 이승한. "설리와 김용균이 죽음으로 고발한 세계의  얼굴." 황해문화 Vol. 106, (2020): 225-226.

[14] Accessed May 1, 2020.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10142116015755

 

[15] 이승한. "설리와 김용균이 죽음으로 고발한 세계의  얼굴." 황해문화 Vol. 106, (2020): 213-229; Accessed May 2, 2020: 임재후. “설리의 죽음, 이수만은 SM엔터테인먼트 관리체계 의문에 답해야.” 비즈니스포스트. 2019-10-15 (http://m.businesspost.co.kr/BP?command=mobile_view&num=147044); 정하은. “종현·설리·구하라…아이돌의 웃음  가려진 눈물 닦아야.” 스포츠서울. 2019-11-26(http://www.sportsseoul.com/news/read/853230); 박성의. ““슬픈데, 울지 말래요”…벼랑 끝에  ‘아이돌.  시사저널 1573(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503); 권순택. “설리를 ‘악플금지법’에 담지 말라.” 월간 워커스. 2019-10-31 (http://workers-zine.net/31237)

[16] Accessed May 2, 2020: 조인우. “윤김지영 교수 "설리가 악플 때문에? 본질은 여혐이다." ” 뉴시스. 2019.10.20 (https://www.msn.com/ko-kr/news/national/윤김지영-교수-설리가-악플-때문에-본질은-여혐이다/ar-AAJ3bkM); 오연서, 권지담. “ “설리가우리다” 2030 여성들의 공감과 분노.” 한겨례 2019-10-16 (www.hani.co.kr/arti/society/women/913331.html)

[17] 이승한, 227.

[18] 스피박, “서발턴은 말할  있는가,” 113.

[19] Accessed May 2, 2020. JTBC 악플의  16 (https://youtu.be/9YZxJj6c2IQ)

* 필자소개

이름마저 없었다면 무명씨가 되었을 먼지 같은 존재. 절반쯤 내면화한 타의를 따라 (한국) 국경 너머에서 살아가고 있다.

** 다음 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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